조선사들은 단순한 대량 생산에서 벗어나 기술 집약적이고 고도화된 선박 건조로 눈을 돌리고 있고,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LNG, 메탄올, 암모니아 같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개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분기 기준 3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선박 수주 1위를 탈환했다. 액화천연가스(LNG)선·암모니아선 같은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을 한국 조선사가 100% 수주한 덕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적자 늪에 빠졌던 한국 조선사들이 업황 회복과 민·관 협업을 통해 고가의 친환경 선박 수주에 나선 덕에 부활의 뱃고동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불황을 겪었던 한국 조선사들의 턴어라운드는 2020년 이후 IMO의 환경규제가 기회가 됐다. 2022년엔 고부가가치ㆍ친환경 선박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 전세계 발주량 2079만 CGT(270척) 중 58%에 해당하는 1198만 CGT(149척)를, 친환경 선박에서도 우리나라는 전세계 발주량 2606만 CGT 중 50%인 1312만 CGT를 수주해 전세계 수주량 1위를 달성했다.
이는 고강도 구조조정 속에서도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이어간 덕분이다. 현재 HD한국조선해양은 신재생에너지를 접목한 고부가가치 선박 및 해양 설비 중심으로 연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에는 독일 HD유럽연구 센터를 중심으로 향후 5년간 1500만유로(약 221억원)를 투자해 차세대 선박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중공업은 거제·판교·대덕 R&D 센터에서 액화수소 추진 선박, 연료 공급 시스템 등 친환경 에너지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화오션도 서울과 거제·시흥에 중앙연구원과 특수선 사업부를 두고 친환경 및 스마트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 조선사들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술 개발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별도의 엔진사업부를 운영하며 친환경 엔진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한화그룹은 HSD엔진 인수를 통해 엔진 제조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 기술적인 차별화를 이루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조선사들은 짧은 인도 시기와 낮은 가격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한 친환경 선박에서는 한국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LNG, 메탄올, 암모니아와 같은 연료를 사용하는 이중연료 추진선 분야에서 한국 조선사들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친환경 선박ㆍ에너지 전시회인 ‘가스텍 2024’에서 독보적인 친환경 선박·에너지 기술을 앞세운 한국 조선사들의 약진이 주목받았기도 했다. 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빅3사는 다수의 국제 인증기관으로부터 기술을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도 못지 않다. 사실상 수주를 독식하는 컨테이너선뿐 아니라 최근엔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중국 조선업계도 정부의 지원을 앞세워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전 세계 친환경 선박의 50% 이상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아직 첨단 솔루션과 시스템이 장착된 선박, 선대 확보, 고효율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건조 능력 측면에서 한국 조선사들이 중국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에 기술 초격차를 벌여나가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이어져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술력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더 확대해 친환경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