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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 남북합의에 기초해 ‘평화경제론’ 등을 내세우고 ‘평화번영 정책’(노무현 정부), ‘평화 우선의 한반도 정책’(문재인 정부)을 추진했다. 진보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이중성을 반영해 남북합의에 따른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하려 했다. 진보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한 대로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론’과 유엔 동시가입 등 남북공존을 모색했던 ‘1991년 체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6·15 공동선언의 합의정신에 따라 민족공조·남북공존을 모색하며 통일보다는 평화를 우선시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이명박 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박근혜 정부)를 내세웠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급변사태와 북한붕괴론 등에 희망을 걸고 흡수통일을 추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헌법에 기초한 통일정책 추진을 부쩍 강조하며 ‘자유의 확산’을 통일정책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주장했으며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수령체제’의 변화를 유도해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고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 대한민국’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8·15 통일 독트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새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통일구상과 담론을 ‘8·15 통일 독트린’이란 이름으로 밝힌 것은 다행이다. 여야합의와 국민적 공감대 없이 새 통일방안을 제시할 경우 남남갈등을 불러오고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발표한 것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통일 의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72년 유신헌법을 채택하면서 통일을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수립했다. 198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대통령의 통일의무 조항을 그대로 존치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는 내용도 유지했다. 헌법기구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설치하고 대통령의 평화통일정책을 자문하도록 했다.
통일을 국민의 의무가 아닌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함으로써 대통령의 통일정책과 관련한 초법적 ‘통치행위’가 인정되도록 한 것이다.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규정과 헌법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내용은 상충한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평화통일정책을 추진하는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규율해 왔다. 실정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간주한다. 대통령에게 대북·통일정책과 관련한 초법적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통일 의무 실현을 위한 권능 부여로 볼 수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 이중성을 고려할 때 ‘8·15 통일 독트린’에 의한 ‘헌법 만능’의 통일정책은 ‘자유의 확산’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헌법과 국가보안법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펼치는 것과 남북합의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에 따라 대북·통일정책을 펼치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통일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