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헝가리 수교 34주년 기념전
''얼룩말'' 등 200여점 선보여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 인물"
2024년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로 칠해진 줄무늬가 중앙을 휘감고 있다. 커다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얼룩말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다. 빅토르 바자렐리(1906~1997)의 ‘얼룩말 Zebras’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바자렐리는 인간의 망막에서 일어나는 잔상효과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옵티컬 아트’(옵아트)의 창시자다.
20세기 추상미술의 한 장르인 옵아트를 대표하는 빅토르 바자렐리 전시가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과 헝가리 수교 34주년을 기념한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전이 내년 4월 2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바자렐리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이래 33년 만이다.
전시에서는 헝가리 국립 부다페스트 뮤지엄과 바자렐리 뮤지엄이 소장한 200여 점에 달하는 걸작을 선보인다. 2019년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에서 약 45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바자렐리의 전시 이후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 빅토르 바자렐리의 ‘얼룩말’(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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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아트부터 키네틱 아트까지
바자렐리는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아티스트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성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공공 건축과 도시 개발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 작품의 무한한 복제와 적용을 시도한 그는 195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1970년 바자렐리 재단을 설립한 후, 1982년 자신의 조국인 헝가리에 작품을 기증했다. 4년 뒤인 1986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자렐리 공공 컬렉션을 소장한 ‘바자렐리 뮤지엄’이 부다페스트에 문을 열게 됐다.
| 빅토르 바자렐리의 ‘펠다’(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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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그래픽 아티스트로 출발해 광고 디자이너와 추상미술 작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발자 등을 거친 바자렐리의 작품 세계와 인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총 13개의 섹션을 통해 시대별로 작가가 몰두한 작품의 경향과 스타일을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옵아트 작품뿐 아니라 그래픽 아트, 추상 미술, 키네틱 아트(모빌 조각 등 움직임을 주요소로 하는 예술작품)까지 한 자리에 모았다. 바자렐리는 현미경 너머로 관찰되는 세포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조형 언어인 ‘플라스틱 유닛’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가 선보인 기하학적 추상은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를 계기로 일명 ‘옵아트’로 불리게 됐다.
바자렐리의 예술 세계는 정사각형, 공간, 움직임, 시간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구성돼 있다. 그는 기호, 무작위적인 붓질, 개인적인 제스처 등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온전히 ‘시각적 개념’이 작품에 드러나게 했다.
바자렐리는 미술계뿐 아니라 패션과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오로스 마르톤 헝가리 바자렐리 뮤지엄 관장은 “바자렐리는 시대를 앞서나간 선구자적 인물이었다”며 “무려 50여년 전에 디지털 기법을 착안했고, 옵아트의 기하학적 패턴은 방직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전시 전경(사진=삼화페인트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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