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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 따르면 그해 11월 18일 준희양은 김씨와 함께 살던 집에서 사라졌다. 김씨가 집을 비운 오전 11시 44분부터 오후 4시 4분 사이 준희양이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곧바로 실종신고는 하지 않았다. 고씨의 내연녀 이씨는 “아이 아빠(고씨)가 데려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씨의 어머니였던 것.
실종 신고는 준희양이 집에서 사라진 21일 뒤인 12월 8일에 접수됐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경찰은 김씨가 준희양을 방임했다고 봤다. 이에 경찰은 준희양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김씨의 집과 준희양의 친부 고씨의 전북 완주군 봉동읍 아파트와 이씨의 전주시 우아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혹시 모를 범죄 연루 가능성을 대비해 과학수사대도 동원돼 혈흔감식을 벌였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겼다. 준희양의 가족들이 이상할 만큼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던 전주덕진경찰서는 준희양의 정확한 실종 시점에 대해 의문을 품었는데, 준희양의 실종날짜는 11월 18일이었고 고씨는 “이틀 전 준희양을 봤다”고 진술했다. 김씨와 고씨의 진술이 맞다면 한 달을 전후해 준희양이 사라진 것이 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교육기관을 간 흔적이 없는 등 준희양의 생활 반응이 이상하리만치 없었기 때문이다. 훨씬 이전부터 실종이 됐을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에 실종 날짜를 가늠하려면 좀 더 확실한 진술이 필요했지만 가족들의 추가 진술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당시 덕진경찰서 관계자는 언론에 “아무래도 친부의 진술에 신뢰감이 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준희양을 본 날짜를 확증하기 위해 최면조사 등을 접목시키려 했는데 협조하지 않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더 서둘러 수사를 독촉해야 되는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지근거리에 있던 김씨의 진술을 기대했던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등의 모습으로 더욱 의문을 자아냈다.
준희양은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준희양이 어린이집 교육기관에 다닌 기록은 전무했다. 병원진료기록도 없었으며 어떤 동선으로 생활을 했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준희양은 실종일까, 유괴일까. 경찰은 미궁에 빠졌다. 결국 고준희양을 찾기 위해 12월 15일 공개 수사로 전환해 신고 포상금 500만 원을 내걸고 제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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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하자 혈흔에서 준희양과 고씨,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 좁혀오는 수사망에 친부 고씨는 12월 28일 “4월에 아이 시신을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다음 날 김씨 집에서 약 50분 거리 군산시 내초등의 야산에서 수건에 싸인 준희양의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준희양의 갈비뼈 3개가 부러져 있는 등 폭행의 흔적도 남겨져 있었다.
고씨와 내연녀 이씨는 준희양이 토사물을 흘리다 사망해 그대로 사체를 유기했을 뿐, 살해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준희양이 사망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이들의 학대가 있었다.
준희양은 부모의 이혼 뒤 엄마 오빠 2명과 같이 살던 중 2017년 1월 친부 고씨에 보내졌다. 고씨의 집에는 내연녀 이씨와 이씨의 아들도 있었다. 그러나 준희양은 1살 많은 이씨의 아들과 싸움이 잦다는 이유로 그해 4월 이씨의 어머니 김씨의 집에 보내졌다.
이후 이들은 선천적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는 준희양이 잠을 자지 않고 떼를 쓴다는 이유로 발로 짓밟는 등 학대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폭행 후 의식을 잃은 준희양을 그대로 방치해 숨지게 했다. 또한 양육수당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2018년 6월 29일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아동학대치사와 사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친부 고씨와 동거녀 이씨에 각각 징역 20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160시간의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암매장을 도운 김씨에게도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세 명 모두 ‘형량이 부당하게 높다’고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양형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