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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둘다 해임에…法 MBC는 제동, KBS는 유지한 이유는[판결왜그래]

김형환 기자I 2023.09.17 07:00:00

방통위, 남영진 이어 권태선도 해임 결정
소송 제기에 法 “권태선 복귀, 남영진 유지”
핵심은 ‘회복 가능 여부’·‘공공복리 영향’
법관 공격한 與…법치주의 흔들지 말아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지난 월요일(11일) 공영방송 이사장 2명의 명암이 엇갈렸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과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었습니다. 법원은 권 이사장의 이사장 해임 처분 집행정지 소송을 받아들였고 남 전 이사장의 집행정지 소송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분명 유사한 사안인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 둘의 운명을 바꿨던 법원의 판단은 무슨 근거였을까요?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KBS·MBC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 긴급 기자회견’에서 남영진 KBS 이사장(오른쪽)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왼쪽)이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法 “권태선 복귀, 남영진 유지” 결정

앞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달 14일 남 전 이사장을 KBS 이사장에서 해임했습니다. 남 전 이사장이 과도한 법인카드 사용 논란으로 조사를 받는 등 KBS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KBS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달 21일, 방통위는 권 이사장을 해임했습니다. 권 이사장이 과도하게 MBC 임원 성과급을 올려주고 MBC 및 관계자 경영 손실을 방치하는 등 방문진 이사로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이 이유였습니다. 참고로 방문진은 MBC 최대 주주로 MBC 사장의 임명권·해임권 등을 가지고 있으며 경영전반에 대해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남 전 이사장과 권 이사장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방통위의 이같은 결정은 절차상 문제가 있으며 해임의 사유가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권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심리에서 “해임의 목적은 방문진 이사회 구성을 편법으로 바꿔 MBC 사장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라며 “방통위가 언론 견제를 받기 싫으니 숨 쉴 공간을 닫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남 전 이사장과 권 이사장은 법원에 해임 처분 집행정지 소송과 이사장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사장 해임처분 취소 소송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지만 집행정지 소송의 결과는 나왔습니다. 권태선 이사장의 청구는 인용됐지만 남 전 이사장의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지난 11일 권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 처분 집행정지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는 같은날 남 전 이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KBS 이사장 해임 집행정지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 저지 야 4당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 및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핵심은 ‘회복 가능 여부’·‘공공복리 영향’

같은 사안인데 왜 권 이사장은 방문진 이사로 복귀하고 남 전 이사장은 복귀하지 못했을까요. 판단의 핵심은 바로 행정소송법이었습니다. 행정소송법에서는 집행정지의 실체적 요건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것’과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을 들고 있습니다. 즉 이들의 해임에 대한 손해가 회복될 수 있는가와 해임처분 취소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권 이사장에 대한 판단은 ‘해임으로 인한 손해를 회복할 수 없으며 해임 또는 해임처분 취소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없다’였습니다. 재판부는 “방문진 이사로서 직무수행은 개인의 전문성, 사회 대표성 내지 가치관, 인격의 발현과도 관련돼 있다고 봐야 함으로 (해임으로 인한) 손해가 단순히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그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해임으로 인한 손해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 “방문진은 다수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운영됨으로 권 이사장이 방문진 업무를 총괄하는 이사장에 해당할지라도 중요사항 결정은 이사회 구성원 중 1인의 이사로 지분적인 의사결정 권한만 행사한다”며 “처분 효력 정지로 인해 방문진 이사회 운영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공공복리에도 중대한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권 이사장은 2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 이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남 전 이사장에 대한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해임으로 인한 손해가 의결기관의 정책적 판단보다 더 적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해임처분으로 인해 남 전 이사장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KBS 이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불이익을 입는 것은 사실이나 남은 잔여 임기, 이사장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부분 보다는 의결기관으로서 정책적 판단을 하는 공적인 부분이 더 강조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공공복리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에 대한 판단도 권 이사장과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남 전 이사장이 잔여 임기 직무를 수해할 경우 KBS 이사회 심의 등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거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며 “남 전 이사장 임기인 2022년 약 117억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광고 수입 하락 및 수신료 분리징수로 장차 손실이 확대될 것이 우려되고 있어 KBS는 경영실적 악화를 개선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해임 복귀로 인해 공공복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권 이사장 해임 효력 정지라는 법원의 결정에 여당은 “(재판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결과가 나온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며 과거의 판결 결과까지 가져와 재판부를 흔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부합하지 않는 결정을 했다고 재판부를 공격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습니다. 물론 판결에 대한 분석과 비판적 평가는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넘어 과거 판결을 들먹이며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하는 듯한 공격은 법치주의 실현의 근간인 ‘법관의 독립성’을 흔드는 행동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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