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지난달 말 계도기간 종료로 이달 초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무릇 시범사업은 본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경우는 다르다. 초진환자 진료를 금지하는 등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데다 기존 관련 법규와 정부가 정한 지침을 위반하는 행위에 처벌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말이 ‘시범사업’이지 실상은 ‘억제사업’이라고 할 만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와 지난 3개월간의 계도기간에 비해 비대면진료의 허용 범위가 대폭 축소됨에 따라 비대면진료는 그 자체가 고사 위기로 내몰린 것과 다름없다. 비대면진료 요청은 계도기간에 이미 크게 줄었다. 계도기간 이전 5000건에 달했던 일평균 비대면진료 요청이 6월 4100건, 7월 3600건, 8월 3500건으로 급감했다. 의사와 환자를 연결해주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은 줄줄이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29개 가운데 점유율 1위의 닥터나우 등 15개가 관련 사업을 접었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싹을 틔우는가 싶던 비대면진료가 뿌리째 말라죽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국회가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위한 입법을 미루어온 탓이 크다. 여당과 야당 양쪽 모두 비대면진료 법제화에 극력 반대하는 의사단체 등 관련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며 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비대면진료 계도기간 종료에 임박해서야 지난달 24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또 다시 결론 내기를 보류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 매달린 여야가 비대면진료 법제화 문제를 뒷전으로 돌린 것이다.
비대면진료의 편리함과 안전함은 물론 국민건강 개선 효과는 지난 3년여 한시적 허용 기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강하게 비대면진료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비대면진료가 의료 서비스와 관련 산업의 혁신에 기폭제가 되리라는 기대도 크다. 여야는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위한 입법 논의를 속히 재개해야 한다. 막 형성되기 시작한 관련 산업의 불씨를 여기서 꺼트린다면 정치권은 신성장 동력을 뭉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