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30년 장기불황 탈출 청신호①
닛케이 지수 35년만에 최고치
美中 갈등 반사이익 투자 몰리고
엔저에 외국인 관강객 밀려들어
[이데일리 방성훈 장영은 기자] 일본 경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엔저에 힘입어 외국인 관광객이 물밀듯 밀려와 지갑을 열고 있고, 미·중 갈등으로 과거였다면 중국으로 갈 직·간접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수십년 간 본 적이 없었던 3%를 웃도는 물가는 일본 국민에게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곳은 주식시장이다. 닛케이지수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힘입어 버블 붕괴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도 3만 3706.08에 장을 마감해 1990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16일 3만 3706.08에 장을 마감한 뒤 한 도쿄 시민이 종가가 적힌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니혼게이자이) |
|
미·중 갈등, 엔화 약세, 경기회복 기대, 기업실적 개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특히 5월 이후엔 반도체 투자열기가 강력한 상승 모멘텀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미·중 반도체 전쟁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글로벌 투자 열기를 일본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마이크론(5000억엔)과 삼성전자(300억엔)가 투자를 결정했고, TSMC는 일본에 추가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마이크론에 2000억엔, TSMC에 4760억엔, 라피더스에 700억엔 등 막대한 보조금 지원도 서슴치 않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훈풍은 소니와 덴소 등 일본 기업들의 반도체 투자도 이끌어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증시 상승의 시발점은 4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일본 종합상사 투자지만, 5월 강세장은 주요 반도체주 폭등세가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주요 경제지표에서도 부활 조짐이 확인된다. 올해 1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대비 0.7%를 기록해 속보치(0.4%)에서 상향조정됐다. 기업 설비투자(1.4%)가 속보치(0.9%) 대비 확대한 영향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주요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1분기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물가상승률도 지난해 4월 200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2%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3%대를 유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 (그래픽= 김정훈 기자) |
|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임금인상률(3.67%)이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도 소비 활성화 기대를 키우고 있다. 아직 중국인 단체여행객이 없는데도 엔저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다는 점도 경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는 “최근의 일본 경제 호조세가 일시적은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증시가 3만 3000선을 넘었다고 이전처럼 거품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손영환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일본 경제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내수와 함께 해외 수요가 뒷받침이 돼야 된다”며 “글로벌 경기 회복 여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