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세계경제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며 “가파르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보조금 등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플레 압력과 싸우기 위해 강력한 통화긴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무분별하게 확대할 경우 물가억제 효과는 약화되고 인플레는 장기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경기상황 악화에 따라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지원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번 IMF의 경고처럼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급과 같은 무차별적 정부 지출은 굳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계층에까지 혜택을 주는 등 재정 낭비를 초래한다. 한쪽에선 돈줄을 죄고 다른 한쪽에선 돈줄을 푸는 엇박자는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효과를 반감시키게 마련이다. 영국 트러스 정부가 최근 전방위 감세와 보조금 지급방안을 내놨다가 인플레이션 악화, 재정위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자 이를 철회한 건 이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만한 국정운영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한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야 정치권 모두 돈풀기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월 30만원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4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떠 재정건전성보다 민생 건전성을 살펴야 한다며 불법사채 무효법 등 선심성 가계부채 3법의 조속한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장병 월급 200만원 인상 등 표심과 연결된 정책이라면 뒤질세라 돈풀기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처음으로 5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고통스러운 통화 긴축에 나섰다. 하지만 무리한 재정지출 확대는 IMF의 경고대로 물가억제 효과를 없앨 뿐 아니라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장기화하는 등 경제를 악순환의 터널로 몰아갈 수 있다. 대내외 경제의 불안정성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인플레의 고통을 장기화하고 국가재정을 좀먹는 정치권의 재정 포퓰리즘은 이제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