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지난 26일 서울 망원동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경기도 모처 동물권행동 카라의 미니 팜 생추어리. 차에서 내리자 진흙과 건초, 사료 냄새가 뒤섞인 전원의 내음이 물씬 풍겼다. 100% 시민 후원으로 유지·운영되는 이곳에는 구조됐으나 머무를 공간이 마땅치 않은 미니피그, 염소 등 농장동물 13마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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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용감한 면이 있어요. 자스민은 조심성이 많고, 로즈는 먹는 걸 특히 좋아해요.”
‘미니피그’라더니 전혀 작지 않았다. 올해 3월 릴리는 93kg, 자스민은 110kg을 기록해 다이어트 중이라고 한다. 릴리, 로즈, 자스민이 펜스 밖 활동가들을 보고 땅을 파던 행동을 멈췄다.
유지우 활동가가 간식 봉투를 흔들며 펜스 안으로 들어갔다. 맛난 것을 눈치챈 돼지들이 정적을 깨고 심히 짧은 꼬리를 흔들며 뒤뚱뒤뚱 발걸음을 뗐다.
“어? 이상하다. 릴리가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지?” 릴리는 간식을 먹는 듯하면서도 숨을 ‘씩씩’하고 거칠게 몰아쉬며 활동가를 짧은 다리로 추격하고 있었다. 확실히 자스민과 로즈는 간식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발정 왔네.” 유심히 릴리를 지켜보던 조현정 활동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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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로즈, 자스민은 개 농장주가 용돈을 벌기 위해 번식용으로 키웠던 암컷 미니피그다. 돼지들 모두 출산 경험이 있었으나 새끼들은 어디로 팔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거의 다 큰 상태로 구조돼 중성화 시기를 놓쳤다. 암컷은 개복·전신마취 위험도 있는데 경험이 있는 병원도 손에 꼽는 상황이다. 미니피그를 반려동물로 들일 경우 암컷은 발정기 수컷은 공격성 때문에 중성화가 필수다.
미니피그의 ‘활동성’은 파양 사유 중 하나다. 생각보다 큰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힘센 코로 여기저기 들이받아 가구를 파손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릴 적 작은 모습만 보고 입양했다가 속절없이 불어나는 체중 때문에 파양되기도 한다. 미니피그는 발굽과 발톱의 균형이 맞지 않을 시 부상이 생길 수 있다. 흙 목욕을 좋아해 파상풍·폐렴균 등 각종 질병 예방백신 접종과 정기적 구충 등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카라는 구조 후 △영양가 있는 먹이 급여 △서늘한 휴식공간 여부 △진흙 목욕이나 발톱 관리 등 미니피그 복지를 위한 시간·경제적 여유를 고려해 입양공고를 냈다. 미니피그 돌봄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들이 나열됐지만, 결론적으론 입양 문의는 0건이었다. 릴리, 로즈, 자스민은 개농장을 탈출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까탈스럽지만 애교 많은 염소들의 ‘안식처’
보편적이지 않지만, 일부 가정에서 반려동물로 키워지고 있는 미니피그와 달리 흑염소는 입양 홍보조차 하지 못했다. 미니피그는 적응 기간을 거치면 실내 생활이 가능하지만, 흑염소는 야외 생활에 적합한 자연적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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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들은 돼지들과 달리 땅에 떨어진 음식은 쳐다도 안 봤다. 다른 동물의 침 냄새가 섞여도 고개를 휙 돌리거나 조금만 오래 들고 있어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였다. 염소들은 활동가들이 직접 손으로 비트조각을 건네야만 먹었다. 평균 18kg에 달하는 염소들은 비트 간식이 동날 때까지 강아지처럼 발을 올리고 애교를 부렸다. 이 때문에 활동가의 옷은 금방 염소 발굽 자국으로 엉망이 됐다. 생추어리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활동가들은 기지개 한 번 펴질 못하고 동물들을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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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농장서 구조된 개들은 국내외로 입양을 보내고 남은 개체들은 카라에서 운영하는 센터에 입소했다. 염소들은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카라는 생추어리를 조성했다. 동물 구조부터 적당한 부지 마련과 개체별 습성에 맞는 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입되지만, 남겨진 농장동물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조현정 카라 활동가는 “학대로 구조가 필요하거나 도살장 혹은 이동 차량에서 탈출한 농장동물,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농장동물을 구조할 예정”이라며 “농장동물 구조와 보호, 교육과 캠페인을 위해서 생추어리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