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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글로벌 공급망 대란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미국 내에서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와중에 제조업 심리는 급격히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 우위의 시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에너지 가격의 폭등이다.
다만 이같은 공급망 붕괴가 이어질 경우 인플레이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폭등) 가능성까지 지적하기 시작했다.
◇미국 9월 소비 ‘깜짝 증가’
17일(현지시간)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9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2% 감소)를 크게 웃돌았다. 8월 당시 0.7%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0.9% 증가했는데, 두 달 연속 ‘깜짝 지출’이 나타난 것이다.
스포츠용품·악기·도서(3.7%) 분야에서 가장 큰 폭 뛰었다. 주유소(1.8%), 의류(1.1%) 등의 소비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델타 변이가 8~9월 들어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지만, 소비는 호조를 보인 셈이다. 미국 경제의 70% 비중에 육박하는 소비는 전반적인 경기의 척도로 여겨진다.
자동차, 휘발유, 식료품 등을 제외한 8월 근원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8%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한 9월 소매 판매 증가율은 무려 13.9%로 나타났다. 근원 소매 판매의 경우 15.6%를 기록했다.
예상 밖 소비의 급증이 공급망 대란 압력을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팬데믹 이후 인력난에 물류 작업 지체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코로나19 사태 때 억눌렸던 수요까지 폭발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면서 공급망에 더 압력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예상 밖 엠파이어지수 급락
공급망 대란의 방증은 제조업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10월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지수(엠파이어지수)는 19.8으로 전월(34.3) 대비 14.5포인트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26.5)를 밑돌았다.
엠파이어지수는 뉴욕주의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뉴욕 연은이 뉴욕주의 약 200개 제조업체를 평가해 산출하는 것이다. 0을 기준으로 그 이하면 경기 위축을, 그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각각 의미한다. 미국 전역을 조사하는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보다 먼저 나오기 때문에 실물경제를 미리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10월 지수 내 배송시간지수는 전월 36.5에서 38.0으로 상승했다. 사상 최고치다. 물류 지연이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가격수용지수(47.8→43.5), 가격지불지수(75.7→78.7)는 전월과 비슷한 수준, 다시 말해 역대 가장 높은 레벨에서 움직였다. 제조기업에 가해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수요 우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건 유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유는 가계와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1.2% 오른 배럴당 82.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다. 이번주에만 3.7% 올랐다.
골드만삭스의 대미언 쿠발린 원유 전략가는 “이것은 일시적인 겨울 쇼크가 아니다”며 “유가 상승이 더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