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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하늘은 나날이 푸르고 깊어진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판과 그 배경화면도 새파란 하늘이다. 이 하늘 아래를 걷다보면 더 높아서 푸른 하늘과, 깊어서 더 푸른 청정 호수를 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잦아들어 분위기까지 한적하다. 맘 놓고 쉽게 어디를 가기도 애매한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그나마 한적한 충북 청주를 찾아간다. 옛 성곽의 돌담으로 가을 햇살이 날아와 박힌 둘레길과 햇살 머금은 물살 잔잔한 호수 경치가 펼쳐지는 곳들이 있어서다. 그 푸른 하늘 아래 깔린 길을 걷다보면, 그저 눈에 들어오는 눈부신 풍경만으로도 몸의 휴식을 얻고 마음의 양식을 거둘 수 있다.
◇천년의 풍파를 겪어온 성곽길 ‘상당산성 둘레길’
청주에서 이른 가을 가장 걷기 좋은 길은 상당산성 둘레길이다. 청주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어 청주 시민들도 즐겨 찾는 산책 코스다. 총 4.2km의 길로, 보통은 남문 못 미쳐 마련된 주차장에서 남문으로 오르거나, 한옥마을 앞에 차를 세운 뒤 산성저수지를 끼고 난 길을 따라 나무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남문∼남암문∼서문∼동암문∼동문∼동장대∼남문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기본적이다. 1시간 정도 걸린다. 걷는 내내 청주와 청원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볼 수 있다. 이 길은 높낮이가 별로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 성안에는 여러 음식점도 있어 가을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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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시작은 남문 밑 주차장. 곧바로 널따란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돌계단 길을 조금 오르면 남문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성벽 위 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남암문까지의 500m 구간은 내내 가파른 경사가 이어진다. 시원한 조망을 원한다면 성벽 위 길을, 아직은 강한 햇살을 피하려면 바로 오른쪽 소나무 숲 그늘 길을 선택하면 된다. 중간중간 길이 트여 있어 두 길을 번갈아 가는 것도 좋다. 남암문과 그 아래는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발 디딜 틈이 없다.
남암문을 지나면서부터 성벽 둘레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짧은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이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된 수직성벽은 높이가 2∼4m 정도다.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져 있지만 성벽 위로 탄탄하게 다져진 흙길이 대부분이어서 걷기도 편하다.
서문까지의 1.1㎞ 구간은 걷는 내내 조망이 일품이다. 청주시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천안까지도 볼 수 있다. 동암문을 거쳐 동문, 출발지인 남문으로 가는 구간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잠시 앉아 있으면, 종종 다람쥐가 찾아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여기서 동장대 아래 한옥마을로 내려오면 걷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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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정원이 된 ‘대통령의 별장’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동안 최고 권력자의 별장으로 사용됐다. 역대 대통령들이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이용하며 20여 년간 총 89회 472일을 이곳에서 휴가 보냈다. 보안상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지난 2003년 4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 관리권을 충청북도로 이양하면서 일반에게 개방됐다. 이후 청남대는 모두를 위한 숲과 정원이 됐다.
청남대로 들어서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보내는 것은 대청호를 따라 이어지는 진입로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들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조용히 계절을 갈무리하는 나뭇잎들과 맑은 가을 햇살이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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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본관으로 향하는 길. 가을 향기를 전하는 국화 등 가지런히 정돈된 꽃들이 늘어섰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조형물도 선명한 빛깔의 마리골드를 배경으로 위엄을 뽐낸다. 더 이상 대통령이 머무르는 곳은 아니지만, 정성스레 정원을 가꾸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둥근 반송들이 호위하는 길을 지나 대통령이 머물렀던 거실과 침실, 손님방 등이 있는 본관을 둘러보고 나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숲길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길은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가볍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특히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길은 ‘노무현 대통령길’.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이어져 가을이면 빨강, 노랑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화려하게 물들어서다. 약 1km의 짧은 길이지만, 운치에 젖고 낭만을 느끼게 하는 가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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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 ‘문의문화재단지’
충주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32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드라이브 코스로 제법 유명한 길이다. 시골스러운 투박함을 간직한 문의마을을 살짝 지나면 병풍처럼 녹음에 물든 대청호가 눈앞에 와 선다. 그리고 곧 양성산 언덕바지에 문의문화재단지가 나그네를 맞는다.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비대면 여행지이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강소형 잠재관광지다.
이곳은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지역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조성한 공간이다. 4만여 평(약 13만 2000㎡)의 대지 위에 민가 5동, 관아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양성문으로 들어서면 장승과 솟대 앞에 넉넉한 호수의 청량한 바람이 불어온다.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특히 청동기시대를 가늠케 하는 고인돌과 다산을 상징하는 기자석을 돌아서면 충신문과 효자각이 마음에 깨달음을 일러준다. 단지 위로 올라가면 중부지방에서 보기 드문 돌너와집(부용민가)도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문의현의 관아 객사 건물인 문산관을 비롯해 서길덕 효자각, 김선복 충신각 등의 옛 비석도 이전돼 있다. 마치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빛햇살을 잘 받아든 대청호를 애잔한 추억과 고즈넉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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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에서 용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미원면의 ‘청석굴’도 이른 가을에 찾아가기 좋은 곳이다. 옥화9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명소다. 옥화9경은 달천 주변으로 숲과 나무, 기암괴석, 물길이 만들어낸 9곳의 비경을 말한다. 달천변을 따라가면 청석굴을 시작으로 용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신선봉을 지나 마지막 9경인 박대소를 만날 수 있다. 청석굴은 구석기 유적지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 찍개와 볼록날, 긁개가 발견됐다. 오래전 우리 선조가 생활했던 그대로를 간직한 동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