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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지섭 기자]코오롱생명과학(102940)은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기술수출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난 2016년 코오롱생명과학이 일본 미츠비시타나베와 약 5000억원 규모로 인보사에 대한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해 돌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것. 코오롱생명과학이 임상시험에 쓰일 약의 생산지가 바뀐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미츠비시타나베가 내세운 계약 해지 사유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라며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계약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달 19일 미국 먼디파마와 총 6677억원(약 5억9160만달러) 규모로 인보사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해소했다. 지난번 취소된 계약보다 17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이처럼 코오롱생명과학이 기술수출로 울고 웃은 것은 신약 개발 과정과 계약 조건 등에 그만큼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약·바이오업계에서 대규모 기술수출은 흔히 ‘잭팟’에 비유하지만, 계약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술수출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기술수출을 포함한 전 세계 기술이전 건수와 규모는 2013년 1108건(545억달러)에서 2014년 1291건(760억달러), 2015년 1655건(900억달러), 2016년 1749건(920억달러), 2017년 1680건(770억달러) 등 세계적으로 기술이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1년에 비해 지난해 건수와 규모는 각각 51.6%, 41.2% 늘었다. 기술을 파는 회사는 초기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 등을 기술이전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후기 단계 임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기술을 사간 회사는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을 제품군으로 확보해 미래 먹거리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수출 역사 쓴 한미약품…계약 해지 아픔도 겪어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기술수출의 역사는 지난 2015년 11월 한미약품(128940)이 프랑스 사노피아벤티스와 체결한 총 39억유로(약 5조192억원) 규모의 ‘퀀텀프로젝트’ 기술수출 계약에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전체 제약시장이 19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약품의 5조원대 기술수출 계약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알리고, 내수 복제약 중심 성장에서 신약개발로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2016년 한미약품과 미국 제넨텍의 9억1000만달러(약 1조289억원) 규모의 표적항암제 기술수출, 같은해 동아에스티(170900)와 미국 애브비의 5억2500만달러(약 5936억원) 규모 면역항암제 기술수출, 지난해 제넥신(095700)과 중국 아이맙의 5억6000만달러(약 6332억원) 규모 면역항암제 기술수출 등 대규모 기술수출이 이어졌다. 올해도 지난달에만 유한양행(000100), 코오롱생명과학, 인트론바이오(048530), 에이비엘바이오가 잇따라 기술수출 성과를 냈다. 총 3조4000억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성공 사례만 있던 것은 아니다. 앞서 2015년 3월 6억9000만달러(약 7783억원) 규모로 미국 일라이 릴리와 체결한 면역치료제 ‘HM71224’는 지난 2월 2상에서 임상을 중단했고, 지난 2015년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3000만달러(약 8224억원) 규모로 체결한 표적항암제 ‘HM61713’(성분명 올무티닙)은 계약이 돌연 해지됐다. 한미약품은 올무티닙 기술수출에서 결국 총 계약규모의 1/10에 못미치는 6500만달러(약 735억원)만을 남겼다.
5조원대 퀀텀프로젝트 기술수출 계약의 경우에도 계약 변경으로 총 계약금액이 29억1600만유로(약 3조7537억원)로 일부 감소했다. 이처럼 계약 해지나 변경이 일어나는 이유는 신약을 완성하기까지 성공확률이 10%에 못미치고, 경쟁약보다 늦게 출시하면 시장에서 성공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를 몸소 체험한 한미약품의 경우 홈페이지에 ‘신약개발 쉽게 알아보기’ 코너를 마련, 신약 기술수출 과정을 투자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신약 기술수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기술수출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기술수출, 총 계약규모보다 ‘디테일’ 주목해야
신약 기술수출은 일반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받는 계약금, 개발 단계별 성취도에 따라 받는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개발 완료 후 제품을 팔았을 때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받는 로열티 등으로 구성된다. 총 계약규모가 단번에 회사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수령할 수 있는 계약금의 규모와 해당 신약기술에 대한 가치 등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총 계약규모가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 사례에서도 당장 수령하는 계약금은 5000만달러(약 566억원)이며, 상업화까지 마일스톤은 최대 12억500만달러(약 1조3627억원)로 예정됐다. 또 애초에 유한양행에 레이저티닙 기술을 팔았던 오스코텍에도 기술수출 금액 및 로열티의 40%를 줘야한다. 조단위 기술수출이지만 유한양행이 올해 손에 쥐는 것은 계약금 중 336억원 정도다. 또 앞서 기술수출 사례를 보면 1조4000억원을 받는 것에도 변수가 많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레이저티닙은 이제 막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 1상과 2상을 진행하고 있는 약이다. 효능이 강력하다고 알려졌지만 상업화까지는 아직 먼 길을 가야한다.
다만 기술수출 계약 해지나 변경 등이 발생했다고 해서 해당 신약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와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 기술수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6년 중국 뤄신과 1억2000만달러(약 1351억원) 규모로 레이저티닙에 대한 기술수출을 했다가 같은 해 12월 돌연 계약이 틀어졌다. 이후 유한양행은 포기하지 않고 레이저티닙의 임상을 진행해 이번 기술수출 성과를 낸 것이다.
증권가 관계자는 “기술수출을 했다는 것은 개발 중인 해당 신약물질을 사들인 회사가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으로 그만큼 불확실성을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기술수출은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업계가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지만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무조건 주가가 높아질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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