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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일 한국감정원을 주택청약업무 전산관리지정기관으로 추가 지정하고 내년 10월 1일부로 금융결제원의 기관 지정을 취소한다고 고시했다. 청약시장에서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하자 불법 당첨자 관리, 부적격 당첨자 검증, 주택 통계시스템과의 연계 등 공적 관리를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지금은 청약이 끝난 후 청약자들의 신청 내용을 국토부의 주택소유확인시스템과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시스템을 통해 확인한다. 청약이 모두 끝난 뒤에 신청자 자격 검증 등이 이뤄지다 보니 단순 실수나 착오로 인한 부적격 당첨자가 양산됐다. 지난해 청약 부적격 건수는 2만1804건으로 1순위 청약 당첨자의 9%에 달했다. 따라서 이를 신청 단계에서부터 적용하면 부적격이나 부정 당첨 사례를 미리 막을 수 있고 청약시장도 투명해질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금융결제원 시스템에 국토부나 행안부의 정보망을 연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금융결제원이 민간의 사단법인인 만큼 기관의 위상이나 기능 면에서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기 위험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에 이관하기로 결정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주택청약시스템 아파트투유를 감정원으로 이관하기로 결정하자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을 이유를 들어 반발했던 전국금융산업노조 금융결제원 노조는 반대 성명 발표, 결의 대회 개최, 탄원서 제출 등을 통해 업무 이관 저지에 나섰다
최근에는 금융결제원과 감정원 간 감정싸움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지난 20일 김학규 한국감정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청약관리 시스템 이관은 금융결제원에서 정부가 요청한 자료를 늦게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발언하자 금융결제원은 이튿날 해명자료를 내고 “국토부가 요구하는 주택청약 자료를 적기에 제공했다”며 김 원장의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각종 제도 변경도 필요해 시간 걸릴 듯
한국감정원은 지난 19일 임시 이사회를 통해 70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청약 관련 데이터 전산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이관 시기인 내년 10월까지 과연 청약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나온다. 한국감정원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4년이 걸렸다.
두 기관의 손발이 척척 맞아도 시간이 빠듯한데 양 기관 간 갈등의 골까지 깊어지면서 이관 시기가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청약 업무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도 청약제도가 변경되면 시스템에 반영하기 위해 2주 정도 청약이 중단된다. 김학규 원장도 “데이터 전산작업을 하는데 기간이 너무 짧아 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금융결제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정원이 금융결제원의 운영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금융결제원은 국책은행이었던 한국주택은행이 전담했던 주택 청약 업무가 전 은행으로 확대된 2000년부터 18년간 은행권의 청약 업무를 담당해왔다. 한국감정원은 금융결제원의 청약 업무 담당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처우나 근무지 문제 등으로 해당 직원들의 고민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각종 제도 변경도 필요해 완벽한 청약 업무 이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금융결제원이 하는 업무를 한국감정원이 하는 것은 청약시 개인의 동의를 받으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그 외 불법·부적격 청약을 단속하거나 점검하는 등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청약 업무로 인한 수입이 있기 때문에 금융결제원이 청약 업무를 내놓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두 기관 간 갈등이 고조되면 아무래도 내년 청약시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결제원이 청약 업무 위탁으로 얻는 수입은 연간 60억원 수준이다. 국토부는 한국감정원으로 청약 업무를 이관할 경우 은행이 내는 비용을 15% 낮출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