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요즘 은행가와 증권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를 앞두고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全)금융기관을 통틀어 1인 1계좌만 개설할 수 있는 탓에 고객 확보에 혈안이 된 각 사는 사전예약까지 받으며 열을 올리고 있다. 고급 자동차에 세계일주 여행권까지 경품으로 등장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7년 전과 흡사하다. 당시 은행원이었던 기자는 ‘만능청약통장’이라며 떠들어댔던 주택청약종합저축을 창구에서 팔았다. 신입행원이었던 기자에게도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월 200계좌 가입이라는 할당이 떨어졌다. 영업일수로 따지자면 하루에 최소 10개는 해야 가능한 수치였다. 사나흘만에 가족과 지인, 친구들은 바닥을 드러냈다. 지역본부에서는 실시간으로 계좌수를 확인하며 증가세가 더딘 지점을 독촉했고 지점장은 매일같이 판매량을 보고토록 압박했다.
일개 은행원들은 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했다. 급여이체를 하는 기업의 직원 명단을 뽑아 일일이 전화를 돌려 “일단 가입만 해달라”고 읍소했고 허락이 떨어지면 자비로 최소가입금액 2만원을 넣고 개설부터 하고 봤다. 계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신분증도 없었고 고객이 넣어야할 금액을 은행원 사비로 채우는 것도 규정에 어긋났지만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대출고객에게도 청약통장 가입을 강권하며 ‘꺾기’를 일삼았고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2만원만…”을 외치곤 했다. 덕분에 주택청약저축은 5개월만에 800만명 이상이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 800만명 중 진짜 가입자가 몇이나 되는지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800만명이란 숫자만 기억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은행장의 훌륭한 성과가 됐다.
이번엔 ISA다. 똑같이 ‘만능통장’이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7년 전보다 더 위험하다. 주택청약저축은 그나마 원금보장이나 예금자보호가 되는 예·적금 상품이고 판매사도 5개 은행에 불과했다. 그런데 ISA는 예·적금과 펀드, 파생결합증권(ELS) 등을 한 데 모은 원금 비(非)보장형 상품인데다 판매사는 출시 예정일인 14일만 해도 35개사에 이른다. 경쟁은 더 세졌고 상품은 더 위험해졌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를 엄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런데 그 으름장은 7년 전에도 똑같이 놨었다. 게다가 이번엔 금융당국이 나서서 불완전판매 환경을 조성했다. 은행이 난생 처음 판매하는 ‘일임형 ISA’를 판매 한 달 전에야 급하게 허용해줬고, 모델 포트폴리오(MP)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음에도 하위 규정에 대한 해석은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처방했다. 그 사이 은행과 증권사들은 상품 내용도 모른 채 고객 모으기에만 혈안이고, 일부 증권사와 운용사간에는 미심쩍은 거래까지 나타나고 있다. ☞관련기사: [단독]ISA 선점 노렸나… NH證·미래에셋운용 '수상한 거래'
한 증권사 사장은 최근 “굳이 ISA를 1사 1계좌로 제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된 준비도 안된 채 촉박하게 일정을 잡은 것도, 너도 나도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결국 성과에만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일 뿐 고객을 위한 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4월 총선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지금도 내 방에는 7년 전 개설한 주택청약통장 30여개가 나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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