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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덕 칼럼]라제건 사장 고중석 회장의 경우

남궁 덕 기자I 2014.01.17 06:00:00
[남궁 덕 칼럼]라제건 사장·고중석 회장의 ‘글로벌 굴기’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사장을 처음 만난 건 1992년이었다. 당시 그는 창업 4년차의 새내기 기업을 어렵사리 이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시장서 꼭 승부를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잊혀졌던 그가 22년 만인 지난해 이메일을 보내왔다. 안부인사와 함께 그때의 약속을 지켰노라고. 반갑게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들은 그의 성공기는 한편의 드라마같다. 라 사장은 창업초기 야구배트용 알루미늄 듀브를 만들던 동아알루미늄을 글로벌 텐트폴 업체로 키웠다. 브랜드는 ‘DAC’.텐트폴은 텐트를 지지하는 뼈대로, 건축물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세계 3대 텐트 브랜드인 스웨덴 ‘힐레베르그’ 미국 ‘블랙다이아몬드’ 캐나다 ‘인테그랄디자인’은 모두 DAC 마크가 새겨진 폴을 쓴다.

‘고어텍스’(방수 및 방풍성을 높인 직물 소재)나 ‘YKK’(고급 의류용 지퍼)처럼 DAC는 레저전문가 사이에선 명품 텐트폴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현재 170억 원 규모 세계 고급 텐트폴 시장에서 90%를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이 분야 ‘히든 챔피언’이다. 텐트폴 무게를 18% 줄인 DAC 폴은 세계 3대 텐트업체는 물론 K2,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몽벨 등에도 공급하고 있다.이들 모두 제발로 찾아와 거래를 트자고 졸랐다고 한다. 라 사장은 “우리 제품은 가격 탄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시쳇말로 가격 네고가 없다는 얘기다. 라 사장은 성공비결을 묻자 “한방은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왔을 뿐이었다”고 했다.

의료기기업체 휴먼메디텍 고중석 회장은 대학에서 공예학을 전공한 뒤 의류업체를 차려 큰돈을 벌던 시점에 전혀 다른 분야에 진출한 승부사다. “의류산업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첨단품목을 꾸준히 찾아왔다.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차세대 성장분야인 의료장비가 만나는 곳에서 플라즈마 멸균기를 찾아냈다. 제대로 도전해볼 생각이다.” 10년 전 고 회장을 처음 취재했을 당시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고 회장이 10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자랑할 일이 있다고. 작년 말 프랑스 OMAC(Otherways Managements Association Club)로부터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품질관리 대상을 수상했다고 전했다. 휴먼메디텍의 기술력과 품질관리시스템, 세계 50여 개국에 이르는 판매망 등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라고 고 회장은 설명했다.이 회사의 경쟁자는 전혀 체급이 다른 글로벌 기업 존슨앤존슨이다.

고 회장은 작년 해외시장 개척과 바이어 관리를 위해 총 22만 마일이나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그는 일본 최고 명문 병원인 도쿄대 의대병원에 멸균기를 판매하기 위해 수백 번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결실로 존손앤존슨의 멸균기가 놓여 있던 자리에 휴먼메디텍 제품이 속속 올라가고 있다. 그 좁은 문을 뚫어 작년 80억 원 매출에 8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냈다. 더딘 승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치지 않고 달려와 허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고 회장은 ‘작은 거인’이다.

정부가 얼마 전 민간창조경제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민(民)이 주도하게 된다고 강조했지만, 팀장에 글로벌시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중소기업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으켜서 일자리를 늘리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라 사장과 고 회장은 이구동성으로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못쓴다”고 했다. 창조경제는 구호만으로 띄울 수 없다. 성공한 ‘작은거인’들의 성공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게 창조경제의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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