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유명무실]눈치보이고 시간따지고..엄마 사표낼까?

문영재 기자I 2013.07.15 06:01:30

기업 1500곳 육아휴직 40%
출산휴가 70% 사용 그쳐
어린이집, 직장맘 꺼려

[이데일리 이지현 최정희 기자] 백화점 판매사원 ‘워킹맘’ 김미정(34)씨는 매일 출근전쟁을 치른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3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직장 내 어린이집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백화점 소속이 아닌 임대 매장 소속이라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다. 김씨는 “이전 직장에서도 임신으로 그만두게 된 터라 다시 육아 얘기를 꺼내면 다시 잡은 직장도 잃을까 봐 얘기를 털어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처럼 직장 여성들이 ‘그만둘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 출산과 양육 때문이다. 실력 있는 여성들이 가정으로 들어가는 순간, 회사는 물론 사회적인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여성들이 육아 부담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휴가제를 비롯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등 각종 대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같은 정책의 실효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 있으나 마나 한 제도..“폐 끼칠까 봐”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일·가정 양립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법에 규정된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기업은 69.2%에 그쳤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이행률이 85.1%에 달하지만 10인 미만 기업의 경우 46.7%에 불과하다. 소규모 사업체에 근무하는 여성근로자들일 수록 제도적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도 출산전후휴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직장 맘에게 육아휴직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직장 내 육아휴직제도의 유무에 대해 38.7%의 기업만 ‘있다’고 답했다. 98.3%가 정규직근로자만을 육아휴직제도의 대상으로 정했다.

고용노동부 조사(전국 5인 이상 1500여 개 기업 대상)에선 10명 중 4명만이 육아휴직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직장상사나 동료에게 눈치를 보여 휴직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남성 육아휴직제도도 마련됐지만, 이를 활용한 사람은 전체 육아휴직자 3%선인 1790명에 그쳤다.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된 현실을 반영한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경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하루 반나절만 일하거나 일주일의 절반만 일할 수 있지만, 3.9%만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시간근무제 등 유연근무제 이용률은 극히 저조한 셈이다.

◇ 무상보육 곳곳 파열음

직장여성의 양육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무상보육제도도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온다.

어린이집 보육료가 공짜다 보니 전업주부들도 덩달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바람에 정작 직장여성들의 아이가 갈 곳을 못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직장여성 A씨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인원이 꽉 찼다고 하고, 전업주부라고 하면 자리가 있다고 하는 어린이집이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이용시간이 짧은 전업주부를 선호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어린이집 운영실태도 중구난방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어린이집 4000곳을 조사한 결과 90%가 평균 오전 7시43분부터 오후 7시39분까지 운영한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현실은 다르다.

직장 여성 B씨는 “어린이집이 오후 5시면 전화를 해 우리 아이 혼자 남았다고 압박을 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린이집은 영유아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라 오전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운영해야 한다.

직장 내 보육시설 확대방안도 지지부진하다. 실효성 있는 제재방법이 없고 보육시설이 있어도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성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직장내보육 시설의 경우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남녀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명단공표 외에는 제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각종 육아지원제도가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4대 보험 가입률이 낮은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자유롭게 육아권을 누리기 위해선 사업주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제도적 개선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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