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문재 기자]전세계가 기업들의 탈세문제로 떠들썩하다. 지난달초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세계적인 조세피난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금융거래 기록을 입수해 일부 명단을 공개하며 세계 각국 인사들의 세금 회피 문제를 이슈화시킨 후폭풍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혁신의 대명사 애플은 세금 납부 회피 의혹에 망신살이 뻗쳤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1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탈세 의혹을 해명하는 굴욕을 당했다. 애플 CEO가 세금 문제로 청문회에 출석한 것은 38년 애플 역사상 처음이다.
미 상원 상설조사위원회는 애플이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아일랜드에 이름뿐인 껍데기 회사(paper company)를 세워 지난해에만 90억달러(약 10조원), 4년간 44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세금 회피 의혹 규모는 미국기업 가운데 최대다.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전(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었던 이수영 OCI 회장 부부 등 한국인 245명이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탈세 여부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부인, 장남 등 가족 명의가 사용된 것은 대기업 역외 탈세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검찰의 재계 때리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 및 탈세 혐의가 있는 CJ그룹 오너일가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압수수색을 통해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료를 확보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지난 22일 정상회담에서 탈세를 뿌리뽑자는 데 뜻을 모았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럽내 최대 비밀계좌를 보유한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등도 이에 동참하는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탈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기업인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제민주화, 통상임금 문제 등으로 사면초가 상태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요즘 경기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멘붕’이다.
그러나 탈세는 범죄다. 기업들의 딱한 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범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운동선수가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경고를 받거나 퇴장당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사회질서가 바로 잡히고 국가 미래가 밝아진다.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