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도형 기자] ※이 글에는 상영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져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자기 이름의 의미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산다’고 했다. 그 태도로 말 한마디를 잘못해 그는 15년 동안 사설감옥에 갇혀 군만두를 먹어야 했다.
요새 여야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영화 속 오대수가 떠오른다. 정치권도 ‘오늘만 대충 수습하는’ 행동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기초의원·자치단체장 정당공천 폐지 공약에 대한 입장변화다.
이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 후보도 공통으로 공약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막상 4·24 재보궐선거가 다가오자 양당 모두 우물쭈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천심사위원회가 무공천으로 결정해 상정했지만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난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참석자 대부분이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내에서 제기되는 현실론 때문이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이 조직동원인데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을 놓아버리면 이후 선거에서 조직관리가 어렵다는 논리다. 새누리당은 후보자 등록이 3일도 남지 않은 1일 이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아예 후보를 공천해놓았다. 29일 기초의원 2곳의 공천 결과를 발표했다. 민주당은 법 개정이 안됐다는 이유로 공천을 합리화한다. 김현 대변인은 “공약 이전에 현행법이 있으니정당은 법을 지켜야 한다”며 강변한다.
하지만 두 정당 모두 궁색한 변명이다.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집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과감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유세에서 이를 몇 차례나 강조했다. 그래놓고 이제야 현실론을 얘기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여야 공통공약에 대해선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해당 법안을 담당해야 할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구성조차 안 된 상황이다.
영화 속 오대수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 한마디 때문에 사설 감옥에 갇히고 자기 혀를 자르는 등 끔찍한 형벌을 받은 뒤에야 잘못을 뉘우쳤다. 정치권은 그 오대수만도 못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가뜩이나 정치권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공간이다. 정치인들도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