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26일자 20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올해는 시장안정과 중소기업 혁신을 양대 축으로 금융정책을 펼치겠습니다. 특히 청년·창업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초 주요 금융정책을 발표하면서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이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중소기업 지원과 함께 벤처기업 육성을 꼽았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부터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치면서 고도성장을 이뤄내긴 했지만, 중소기업 및 벤처 생태계가 열악하다보니 경제시스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최근 대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크게 약화되고 있는 반면 벤처기업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벤처기업의 평균 근로자 수는 27.3명으로 일반 중소기업보다 7.2배나 많았다.
성장률 또한 대기업 못지않다. 벤처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벤처기업의 평균 매출은 72억2000만원으로 전년대비 18.9% 늘면서 15.8%를 기록한 대기업 매출 성장률을 앞질렀다.
반면 실리콘밸리를 통해 혁신기업을 쏟아내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벤처 육성시스템은 여전히 취약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1조2608억원으로 전년대비 15.6% 늘었고, 신규 벤처펀드 결성도 2조2591억원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외형성장은 지속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벤처버블의 붕괴에 따른 충격으로 정부의 정책성 자금을 제외한 순수 민간투자는 극히 저조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력만 보유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도 갈수록 줄고 있다. 투자회수 수단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투자금 조성단계…민간투자 비중 저조
우선 투자금 조성단계에서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순수 민간자본의 투자 비중이 적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0년 11월까지 신규 벤처투자 금액은 1조9000억원 규모지만 이중 민간투자는 5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벤처육성 정책에 따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정책성 자금이 70%이상인 셈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투자가 부족한 이유는 창업기업의 경우 투자 후 수익으로 연결되는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또 투자회수 수단이 코스닥 기업공개(IPO)로 한정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벤처투자의 경우 성공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 문제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업단계에서 IPO 이전까지 투자금을 유동화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벤처 지원정책을 입안할 때 민간부문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실제 투자단계…신생기업 투자 저조
실제 투자단계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창업한 지 3년 이내인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력만으론 갈수록 벤처기업 설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1년 설립 3년 이하의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29.6%에 그쳤다. 2008년 40.1%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30%를 밑돌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7년이 넘은 후기 기업 투자비중은 2008년 24.7%에서 2011년 44.3%까지 올라갔다.
벤처캐피탈 본연의 역할은 기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신생기업을 지원하는데 있다. 반면 실제 투자는 신생기업보다는 IPO 직전 단계에 있는 기업 등 투자금 회수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진정한 의미의 벤처기업들은 아예 싹조차 틔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회수단계…IPO+M&A 활성화 필요
민간의 투자비중이 적고, 신생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이유는 결국 투자회수 수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벤처기업의 IPO 문턱을 대폭 낮춰서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보다 손쉽게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벤처기업의 IPO 외에도 인수·합병(M&A)과 기술협력 등을 통해 기술력이 있는 벤처기업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한 금융지원에서 벗어나 기존의 시장 선도기업과 신생 창업기업, 대학, 벤처캐피탈 등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일본의 산업혁신기구와 같은 네트워크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