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르포]추석전 물가..`어쩌나` 빈바구니 한숨만 가득

김대웅 기자I 2011.08.18 09:15:00

철없는 장마에 과일·채소·생선값 급등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시름

[이데일리 최승진 김대웅 기자] 오전 한 차례 비가 지나간 17일 낮 12시 서울 이수역 부근의 한 재래시장은 한산했다.

이곳에서 만난 정육점 주인은 “오전 9시에 문을 연 뒤 12시가 되도록 개시도 못했다”며 읽고 있던 신문을 내려놨다. 그는 “보통 이맘때면 선물세트 주문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 없다”며 “추석 대목이란 말이 그저 남의 얘기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채소 가게도 마찬가지다. 채소 상인 서모씨(60)는 “손님들이 명절 때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와 무 가격만 물어보지 실제 찾지는 않는다”고 푸념했다. 서씨는 “현재 고랭지 배추(1망, 3포기)의 경우 가격이 1만7000원으로 비싸져서 그런지 예년에 비해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올 여름 긴 장마와 폭우로 농산물값이 크게 오르며 주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추석 제사상에 올릴 과일과 야채 등 제수용품이 많이 올라 큰 걱정이다.

◇“추석연휴까지 짧아서 별로 기대 안해요”
 
갈치를 고르던 주부 정모씨(53)는 “치솟은 가격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며 “지난해에는 7000~8000원 수준이었던 것이 지금 보니 1만2000원”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시장에서 20년간 생선을 판매해 왔다는 김모씨(52)는 “추석 때에는 냉동을 제외한 제수용 생물 생선 대부분의 값이 오를 것”이라며 “생선의 경우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추석 일주일 전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이틀 전에는 가격이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씨는 또 “이번 추석은 연휴 기간이 짧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며 “연휴가 짧으면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한 채 자기 식구들만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어서 먹거리 수요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낮이라 그럴까. 지난 16일 저녁 8시에 찾은 서울 건국대입구 부근의 재래시장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주부 박모씨(41)는 퇴근길에 과일가게에 들러 한참을 고민한 끝에 천도복숭아를 3000원어치 샀다. 박씨는 “그나마 천도복숭아가 싸서 먹지 다른 과일은 엄두도 못낸다”고 말했다. 
 
한시간 넘게 지켜봤지만 여름철 대표과일인 수박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비까지 내리자 시장의 일부 수박들은 큰 비닐로 덮여 존재감 마저 없어 보였다.(사진)
 
6년째 이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해왔다는 상인 김모씨(36)는 “수박은 날이 더워야 잘 팔리는데 올해는 삼복 내내 비가 왔다”며 “게다가 가격도 비싸 수박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50% 정도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에 따르면 9kg짜리 수박 한통은 현재 2만원선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4000원 가량 올랐다.
 
그는 “추석 때는 수요가 줄어 수박 가격이 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시기 맛볼 수 있는 햇과일인 배(원황)와 사과(아오리)를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란 게 과일가게 주인 김씨의 설명. 그는 “햇배 원황의 경우 개당 4000원선으로 지난해 보다 1000원 가량 올랐다”고 전했다.

◇대형마트에서도 ‘들었다 놨다’
 
대형마트도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치솟은 물가로 인해 생선·과일 등을 고르는 손님들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17일 오후 서울 용산 이마트 식품매장내 과일코너. 드문드문 과일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복숭아를 들고 한참을 고민한 뒤 다시 내려놓은 한 주부에게 다가가 영문을 물어 봤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는 대답이다. 그는 “추석 용품을 미리 준비하려고 나왔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계획했던 예산과 차이가 너무 크다”면서 “재래시장이건 할인마트건 요즘은 도무지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롯데마트 상품기획자(MD)들이 과일 생선 등 올해 주요 추석용 제수용품 28개 품목 구매비용을 조사한 결과 작년보다 5.2% 늘어난 20만9440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일의 맛과 질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올 여름 집중호우와 일조량 부족 현상으로 산지 수확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일코너를 찾은 한 주부(50, 여)는 “수박 한통에 2만원 이하, 반통은 1만원 이하라는 방침을 유지하다보니 이곳 수박의 크기가 현저히 작아졌다”며 “체감상으론 가격인상과 다를 바 없이 느껴져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생선코너는 더욱 한산했다. 드문드문 발길을 멈추는 손님들도 가격을 쓱 한번 훑어본 뒤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흑조기를 고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주부 김모 씨는 “얼마 전까지 두마리 묶어 팔던게 지금 한마리에 3000원까지 올랐다”며 “다른 생선은 너무 비싸 살 엄두도 못 내고 있고 생선 가격이 전반적으로 작년에 비해 30% 이상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대목을 누려야 하는 입장인 대형마트로서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만큼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직 본격적인 추석용품 구매 시즌은 아니지만 최근 물가가 크게 올라 고객들의 구매 패턴도 매우 신중해졌다”면서 “소비자들의 추석 물가부담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할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