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장 주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임박했는데도 일부 수탁위원들의 거취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라 업계에선 우려가 쏟아진다. 국민연금 수장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강조했지만, 위원 구성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는 탓에 주총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기금위는 지난 7일 올해 제1차 회의를 열고 ‘수탁위 운영규정 개정안’에 대해 심의 및 의결했다. 상근전문위원 3명과 가입자단체가 추천한 인사 6명으로 구성된 기존 방식에서 가입자 단체 추천 인사를 3명으로 줄이고 전문가 단체로부터 3명을 추천받겠다는 내용이다.
수탁위는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하기 위해 기금위 산하에 설치한 위원회다. 이들은 주로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어려워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한 주주권 행사 관련 사항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상위 조직인 기금위에 보고한다. 이 때문에 수탁위는 사실상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수탁위 1기 전문위원 9명 중 총 7명이 지난달 말 임기가 만료됐다. 현재 연임이 확정되거나 새롭게 선임된 위원은 5명뿐이다. 상근 전문위원에 △한석훈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 △신왕건 FA금융스쿨원장, 비상근 전문위원에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민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 △이연임 금융투자협회 미래선략산업조정팀 부부장 등이다.
그러나 수탁위 1기 때와 달리 2기는 정권 교체 이후 출범을 앞둔 상태여서 위원들 구성에 현 정부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선임된 한 변호사도 검찰 출신으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했던 사실까지 알려지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해당 위원은 사용자 단체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로 법령상 자격 조건을 갖추고 있어 임명했다”며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2기 수탁위원들 구성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 출신이 현 정부에서 잇따라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일파만파 번진 파장을 잠재우긴 어려운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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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역대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국민연금이 이달 주총 시즌을 앞두고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단순히 주식 보유와 그에 따른 의결권 행사에 한정하지 않고, 기업과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국민연금의 수장인 김태현 이사장과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CIO)은 지난해 말부터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이들은 KT(030200)의 차기 CEO(최고경영자) 선임 과정 등을 직접 저격하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대표가 선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구체화한 내용이지만, 윤석열 대통령 또한 이를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나서면서 재계를 긴장케 했다. 최근 윤 대통령은 소유 분산기업에 대해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잘 작동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 절차와 방식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주요 상장사의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대통령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를 주문했지만, 수탁위원들 절반이 공석인 상태에서 올해 주총을 잡음 없이 끝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재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압박과 외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새로 선임된 상근 전문위원 논란이 커서 지금 보건복지부가 남은 수탁위원 4명을 뽑는 일에 굉장히 신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궁극적인 목표가 ‘안정적인 수익 제고’인 만큼 단순히 주식 종목을 사고파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