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면 이를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해당 법안을 발의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회관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은 상대방의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습니다.
이는 윤 의원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2.2%포인트, 응답률은 6.5%)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응답자의 63.6%는 상대방이 자기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찬성하는 의견은 29.5%였으며 잘 모름/무응답은 6.9%였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동의 없이 녹음했을 때 법적 처벌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이 52.5%, 반대 41.5%로 격차가 줄었습니다. 다만 통화 상대방이 자신의 동의 없이 녹음한 내용을 공개하면 법적 처벌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찬성 비율은 63.3%로 다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반대는 29.0%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불과 약 일주일 전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성인 9933명에게 접촉해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 ±4.4%포인트, 응답률 5.1%)는 해당 법안에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4.1%는 ‘통화녹음이 내부 고발 등 공익 목적으로 쓰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어느 한 쪽의 여론조사는 ‘진실’을, 어느 한 쪽 여론조사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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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여론조사는 모두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는 사전에 녹음된 음성에 따라 응답자가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지요. 이는 조사원이 실시간으로 묻는 면접조사에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응답자가 성별과 연령 등을 거짓으로 말해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반대로 ‘눈치보지 않고’ 솔직하게 답한다는 장점도 있지요.
아울러 한길리서치는 100% 무선전화에서 무작위 표본 추출을 한 반면, 리얼미터는 97% 무선전화, 3% 유선 전화에서 무작위 표본추출을 했습니다. 유선전화는 휴대전화가 없는 고령자 등을 반영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그 비율이 작은 만큼, 큰 영향은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 양 여론조사기관이 밝힌 응답자 특성을 보면 성별·연령·광역지역별에서 눈에 띌만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양 여론조사가 가장 다른 점은 질문의 방식입니다.
한길리서치는 총 8개 질문에 대해 응답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①전화통화를 할 때 상대방이 선생님(응답자)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
②응답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
③통화 상대방이 응답자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
④통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에 대해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필요한 처벌
⑤통화 상대방이 응답자의 동의 없이 녹음한 내용을 동개하는 것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
⑥통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필요한 처벌
⑦상대방하고 통화를 하는 상대방이 응답자의 동의 없이 통화·녹음한 내용이 재판의 증거로 채택하는 것
⑧원칙적으로 통화 상대방의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제한하되, 대신 부패·부정사건이나 갑질·성희롱·폭력 사건 등과 같은 상황에 한해 사적 대화 녹음 및 공개를 허용하는 것
반면 리얼미터의 질문은 간단합니다.
바로 ‘최근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 내용을 녹음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법안이 발의되었는데요. 귀하께서는 이와 같은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입니다.
답변의 방식 역시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길리서치는 ‘찬성, 반대, 모름/무응답’으로 간소했지만, 리얼미터는 ‘통화녹음이 협박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사생활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찬성한다’와 ‘통화녹음이 내부 고발 등 공익 목적으로 쓰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므로 법안 발의에 반대한다’로 찬성과 반대 논리를 분명하게 설명했죠. 물론, ‘잘 모르겠다’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질문의 방식 차이는 사람들의 답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 자세히 뜯어보면, 양 설문이 모순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한길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적잖은 사람들이 상대방이 나의 동의 없이 나와의 통화를 녹음하거나, 내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과의 통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반대했습니다. 법적 처벌이 있다고 밝힌 이도 과반을 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내용을 녹음했다는 이유만으로 최대 10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는 법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상대방이 나의 동의 없이 녹음을 공개해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답하는 이 역시 벌금형(41.7%)이 맞다고 답하는 이가 징역형(21.5%)보다 2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즉, 녹음하는 것으로 최대 10년 징역형이라는 윤상현 의원의 개정안은 너무 과하다고 보는 이가 많다는 것이겠죠.
흥미로운 것은 응답자들이 상대방이 나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을 하거나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도 이 내용이 법적 증거로 채택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입니다. 응답자의 63.7%가 찬성 의견을, 응답자의 27.7%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통화 내용을 법적 방어권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대방의 통화를 무단으로 녹음하는 것으로 징역형이라는 법안은 이같은 법적 방어권 수단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윤 의원은 “법률안 수정안 검토 단계에서 갑질 문제나 직장 내 괴롭힘, 언어폭력, 협박, 성범죄 및 성범죄 무고 등 직접적인 위협이나 범죄 노출 등의 경우 예외나 단서조항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며 “이번 토론회의 결론을 반영해 조만간 법률 수정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법안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