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석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의료수사1팀장(경감)은 지난 2015년 신설된 서울청 의료수사팀에 발령받았다. 의사의 과실로 인해 사망한 고(故) 신해철씨 사건이 계기였다. ‘곧 없어질 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경찰 내부의 새로운 팀은 1년이 채 안 돼 없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수사팀은 달랐다. 전국 시도 경찰청에 의료전담수사팀이 꾸려질 정도로 외려 규모가 커졌다. 8년여 의료전담팀을 이끌어온 강 팀장을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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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에 처음 의료수사를 전담으로 하는 팀이 생기기 전엔 의료 사망 사건이라도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를 맡았다. 방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고, 수사도 꼬인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억울한 피해자는 늘어갔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4년 ‘고(故) 신해철씨 의료 과실 사망 사건’으로 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 수사 요구가 높아지면서 의료수사팀이 탄생했다. 강 팀장은 이 신설 팀의 수장을 덜컥 맡게 됐다. 1989년 경찰생활을 시작해 강력사건, 장기미제사건 등을 주로 담당해온 강 팀장으로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백지상태였다”며 “일단 판례를 다 찾아 분석해서 판례집을 따로 만들었고, 일선에서 발생한 모든 의료 사건들을 다 보고 밤낮없이 공부했다”고 돌이켰다.
팀에 처음 떨어진 건 중국에서 유학 온 여대생이 불법 낙태 수술을 받다 뇌사상태에 빠진 사건이었다. 집도한 의사는 정상적으로 수술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강 팀장은 “의료 수사도 결국 다른 수사와 마찬가지로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라며 “여러 객관적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밝혀낸 여러 증거들을 갖고 감정 의뢰를 받는 과정을 밟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의료 과실로 드러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론 ‘권대희씨 사망사건’을 꼽았다. 2016년 당시 20대 대학생 권씨가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은 뒤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당시 권씨가 이상증세를 보였음에도 수술을 집도한 병원장은 수술방을 빠져나갔다. 강 팀장은 권씨 사망과 의사의 행위간 인과관계를 밝혀야 했다. 2년여 지난한 수사 끝에 결국 병원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권대희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강 팀장은 “이 사건은 검찰도 못 밝힌 사건”이라면서 “의료 수사를 하면서 자부심을 느낀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의대생처럼 공부…경찰, 검사에 뒤지지 않는다”
의료 수사는 최근 정국의 ‘태풍의 눈’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에서도 언급됐다. 의사 출신으로 신해철씨 의료 사망사고를 수사했던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형사부 장준혁 검사는 지난달 21일 검찰 내부망에 “(의료분야 수사는)경찰에게도 검찰에게도 쉬운 사건이 아니고, 분야 자체의 전문성·폐쇄성으로 인해 의료과오 사건의 실체 접근이 어렵고, 증거 확보도 어렵고, 이에 대한 분석도 어렵다”며 “수사 전문가인 검사들이 그 역량을 펼쳐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검수완박’ 법안 입법을 멈춰달라”고 글을 올렸다.
하지만 강 팀장은 경찰도 검찰 못지않은 ‘의료 수사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강 팀장은 “경찰도 흰종이에 처음 글을 쓰듯 바닥부터 수사를 시작한다”며 “그동안 의대생처럼 의료 수사만 매진했고, 노하우도 구축했다. 그런 경험치를 볼 때 우리 팀처럼 수사를 잘하고 따라올 수 있는 조직이 몇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의료 사건에 숙련된 수사관을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면서 “후배 경찰들이 열정과 의지를 갖고 팀에 머무를 수 있게 유인책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 시장이 커지면서 의료 사건의 수요도 늘고 있다. 의료 관련 사건 수사는 의혹을 밝히고 송치할 때까지 보통 1년이 걸리는 만큼, 업무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현재도 의료수사팀엔 의료 사망사건이 15건 정도 배정돼 있다. 강 팀장은 유가족들의 ‘고맙다’는 한 마디에 힘을 얻는다. 그는 “의료라는 생소한 분야 때문에 유족분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이 억울해 한다”며 “의사들을 처벌하고 감옥에 보내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의혹을 풀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강 팀장은 “의료수사도 결국 수사”라면서 “맨 처음 의료수사팀은 ‘1년 있다가 없어질 팀’이었지만 이제는 귀감이 되는 ‘롤모델’로 거듭났다. 의료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경찰에 가지는 인상도 긍정적으로 바뀌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