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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당금 압박'에 금융지주, 이익·배당 축소 불가피

노희준 기자I 2022.02.17 04:02:00

잠재 리스크 선제적 대응해야 할 금융지주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에도 충당금 20%적게 쌓아
"부도율 보수적 계산하고 대손준비금도 높여야"
VS 준비금 늘면 다시 지난해 배당 통제 회귀 반발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 등 금융지주의 충당금 제도 손질에 나서는 것은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잠재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실적을 내면서도 외려 손실에 대비하는 충당금은 적게 쌓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충당금 신규 적립 줄인 4대 금융지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KB국민·신한·하나우리금융의 실적 발표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대 금융지주는 충당금 전입액으로 3조2398억원을 반영해 2020년(4조653억원)보다 8255억원을 적게 인식했다. 1년 새 20%의 충당금을 더 적게 쌓은 것이다. KB금융지주만 14% 더 충당금을 적립했을 뿐 나머지 하나금융(-38%), 우리금융(-32%), 신한금융(-28%)은 모두 28~38%수준의 충당금을 덜 쌓았다. 충당금은 돈을 빌려간 차주가 원리금을 적기에 상환하지 못해 돈을 떼이는 경우를 대비해 회계상 순이익의 일부를 비용으로 떼내 마련해두는 것으로 부실에 대한 ‘방파제’라 할 수 있다.

주요 금융지주가 충당금을 맘대로 적게 쌓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금융지주의 충당금이 줄어든 것은 충당금 계산 모형의 주요변수인 부도율이 하락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부도율 계산에 제일 중요한 변수가 경기전망인데 2020년보다 지난해 경제전망 지표가 좋아졌기 때문에 당연히 부도율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충당금 계산에 필요한 예상손실율은 ‘부도율(PD)×부도시 손실률(LGD)×여신잔액(EAD)’으로 계산한다. 부도율은 채권이 부도날 확율이며 부도시손실율은 보증과 담보여부에 따라 대출이 부도가 났을 때 입는 손실정도를 말한다.

문제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런 경기전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개별 은행의 부도율 값이 작게 계산됐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도율이 낮으면 충당금도 적게 쌓게 된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코로나 19 감염병 발생 상황에서는 과거부터 사용하던 예상손실 추정을 위한 방법론, 가정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업데이트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부도율 산정 등 예상손실 모형의 적정성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어 경제 금융위기를 대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전망하고 좋지 않은 시나리오를 반영해 부도율을 계산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며 “올해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연말 연초에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감원장이 보수적 충당금 적립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구두 개입’을 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한발 더 나아가 ‘감독목적 충당금’ 역시 더 적극적으로 쌓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은행업감독규정에 있는 최소적립비율을 개선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정상(자산의 0.85%이상), 요주의(7%이상), 고정(20%이상), 회수의문(50%이상), 추정손실(100%)등 건전성 분류에 따라 충당금을 달리 쌓아야 한다. 가령 10억원의 대출자산이 있는 경우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돼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되면 최소 2억원에 해당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충당금 높이면, 주주배당액 축소 불가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주목해야 할 점은 감독목적 충당금까지 늘어나면 회계목적 충당금으로 인한 순이익 감소에 더해 금융지주의 배당까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은행은 감독규정에 따라 감독목적 충당금과 부도율 등으로 계산한 회계목적 충당금과의 차이가 있는 경우 그 차액만큼 대손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자본비율이 떨어지는 금융기관의 경우 대손준비금을 많이 쌓으면 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다. 대손준비금은 보통주 자본으로 분류된다. 자본은 충당금과 함께 대표적인 금융기관 손실흡수능력의 척도다. 다만, 대손준비금은 이익잉여금 하위항목으로 반영돼 배당여력을 제한하는 요소다. 주주입장에서는 은행주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4대 금융의 총 배당액(중간배당 포함)은 3조7505억원으로 2020년(2조2929억원)보다 64%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손준비금까지 늘어나면 지난해 사라진 금융당국 배당 제한 권고가 일부 살아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의 손실흡수능력 확충 차원에서 2020년 배당성향에 대한 제한 권고를 한 뒤 지난해 6월 실물경기 회복 등을 고려해 권고 조치를 종료하고 배당을 금융사 자율에 맡겼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충당금 적립 수준은 상대적으로 여타 선진국 은행 대비 낮다”며 “금리 상승, 대출 한도 축소, 상환 유예 중단, 원리금 상환 비중 확대 시 대손충당금이 단기간에 급증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고 추가 충당금 적립 수준은 은행 실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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