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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늘 혼자였다. 손을 내밀기도 어렵고 발을 떼는 건 더 어렵다. 뼈대만 남은 팔과 다리, 철사만큼 길고 가느다란 몸통을 곧추세우고 저 먼 길을 하염없이 내다볼 뿐이다. 고독한 이 여인에게도 이름은 있다. ‘거대한 여인’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도저히 거대할 수 없는 이 앙상한 자태에 붙은 타이틀이라니. 세간에선 그 ‘거대함’을 몸값에서 찾기도 했다. 수백억원은 우습고, 1000억원도 넘길 거라고 하니. 어쨌든 함부로 끌어안지는 못할 여인인 건 분명할 터.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2m 높이까지 솟은 저 여인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득 오버랩되는 다른 그림이 보이는 거다. 손 내밀기도 발 떼기도 어려웠던, 몸값으로 거대함을 찾으려 드는 세상의 입방정에 마음고생도 꽤 했을, 바로 여인이 지금 서 있는 리움미술관이다.
여인과 리움, 저 둘이 이제 함께 나선단다. 서로 처했던 사정이야 어떠했든,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의 긴 침묵을 깨고 비로소 나란히 존재를 알렸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다시 문을 연다. 8일부터 그간 채워뒀던 고리를 풀고 본격적인 손님맞이에 나선다. 재개관하는 리움미술관이 끌어안은 건 ‘사람’이다. 그 출발점에 세운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청동조각 ‘거대한 여인 Ⅲ’(1960)은 상징이며 암시인 셈이다. 비단 상징·암시만도 아니다. 미술관에서 마주친 누구라도 “대중에게 친숙하고 편안한”이란 말을 꺼내놓을 만큼 사람 속으로 파고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닫힌’ ‘폐쇄’의 수식어가 붙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신호였다. 그 설렘인지 압박인지, 재개관을 이틀 앞둔 6일, 미리 가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은 차분한 긴장감이 물결치듯 뻗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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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시걸·김홍도…거장의 귀환
귀환하는 리움미술관이 신고식으로 삼은 ‘재개관 기획전’은 아예 ‘대놓고 사람’이다. 타이틀부터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국내외 내로라할 작가 51명의 대작 130여점으로 채우고 ‘내가 인간으로 사는 의미’부터 짚어보자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인트로에 세워 시작과 끝을 지키게 한 세 점의 조각품부터다. 일터로 가는 6명 군상의 내면까지 포착한 조지 시걸(1924∼2000)의 ‘러시아워’(1983), 두 팔 벌린 사람을 형상화해 인간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잡아낸 안토니 곰리(71)의 ‘표현’(2014), 여기에 ‘거대한 여인 Ⅲ’(1960)이 합류했다. 1960년부터 20여년의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이들 작품은 사람이 처한 극한 상황을 시대별로 압축했다는 의미가 있다. 혼자만의 절대고독을 거쳐, 군중 속 고립감, 자연·우주의 무한에까지 가닿는, 거대담론에 한 번쯤은 빠져보기에 충분하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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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는 성찰·몸·상처·초월·열망·공생 등 주제어에 따라 ‘질문 던지는 작품’들이 내뿜는 존재감의 향연이다. 론 뮤익, 앤디 워홀, 이브 클렝, 루이즈 부르주아 등 이름만으로도 멈칫 할 해외작가들 사이에 이불, 백남준, 최만린, 정연두, 김아타, 이동욱 등 국내 대표 현대미술가들이 번갈아 섰다.
재개관은 4년 6개월여만이다. 2004년 리움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13년 만에 맞은 최대 위기였을 2017년 3월부터였다. 홍라희 관장,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연이어 사임했던 그때 이후로 미술관은 보이는 철문보다 더 단단한 빗장을 내걸었다. 딱히 안내도 없는 ‘개점휴업’에 돌입했던 거다. 코로나19가 터진 지난해 2월부턴 아예 휴관을 선언했다. 그 와중에 이건희(1942∼2020) 회장이 타계하고, ‘이건희컬렉션’이 세상에 알려졌다. 리움미술관과는 떼어낼 수 없는 운명공동체였던 거다. 그러니 소장품으로 꾸려온 상설전의 전면 개편도 불가피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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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비한 두 상설전, ‘한국 고미술전’과 ‘현대미술전’은 그 사정에 얹힌 변화의 의지가 만든 셈이다. 지금껏 못 봤던 작품을 대거 내놨는데, 현대미술 출품작 절반 이상을 “대중에 처음 공개한다”고 할 정도다. 청자 47점과 백자 50점 등 고미술품 160점 중에는 국보 6점과 보물 4점이 들었다. 고려청자 중에선 ‘청자동채연화문표형주자’(13세기·국보),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13세기·보물)이 보이고, 조선백자 중에선 ‘백자대호’(18세기), ‘백자청화운룡문호’(18세기)가 압도한다. 정점은 김홍도의 ‘군선도’(1776·국보)가 찍었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조형미로 쌓아올린 ‘금동대탑’(10∼11세기·국보)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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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 바꿨다…‘공간’과 ‘작품’
“기획전 재개와 상설전 교체는 변화의 서막이다.” 태현선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리움미술관의 재개관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다만 “완벽한 변화를 보여주기보다 변화를 알리려는 성격”이란 점을 이해해 달란다. “겉으로 드러낸 전시도 변화지만 우리 태도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신호탄은 쏴 올렸으니 어떻게 나아갈까가 관건일 터. 김성원 부관장이 잡은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글로벌 미술관으로 성장하고 글로벌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일, 다른 하나는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일”이라고 했다. 앞엣것은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포부고, 뒤엣것은 선대 회장의 유지라고 했다. 이 두 축 사이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접점을 만들겠다는 거다. “마땅히 엄청난 작품들이지만 전시 가치에 어울려야 한다”고 말한 이는 미술관의 리뉴얼을 담당했던 정구호 크리에이터 디렉터다.
사실 오래 기다렸던 장면이다. 어차피 예술도 사람이 한다는 것, 사람을 움직여야 사람이 든다는 평범한 이치가 배인 현장. 그렇게 사람을 끌어안고 사람 속으로 들어서겠다고 한다. 안아줄지 내칠지는 이쪽 사람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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