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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식탁이 있는 공간은 집 구성원의 생활상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가족이 모여 꼬박꼬박 저녁식사를 하는 집도 있겠지만, 어른도 아이도 모두 바쁜 요즘에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각자 따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식탁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으로 먹을거리를 옮기기도 한다. 대리석 식탁 가운데 멋진 화병을 올리고 격식을 차리며 풍성한 요리를 즐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식탁 끄트머리에서 대충 컵라면에 물을 붓고 찬통을 꺼내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것도 우리의 일상이니, 인간 삶의 가장 다른 양태는 집안 식당에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식탁을 고정적으로 배치한 식당 공간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부엌에서 방으로 밥상을 들고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서양에서도 서민들은 화덕자리와 거실의 어정쩡한 공간에 작은 식탁을 놓고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왕궁이나 귀족의 집에서도 침실이나 침실 옆 전실 정도에서 가족의 식사가 이뤄졌고, 손님을 초대하는 연회를 여는 경우에만 큰 거실에서 만찬을 벌였다. 물론 수도원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장소에서는 고정적인 식당을 마련했는데, 주로 예수 최후의 만찬과 같은 주제가 식당의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그려지곤 했다.
이후 18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식사를 하는 별도 공간인 식당이 왕궁이나 귀족 집안에 본격적으로 도입됐고, 이 시절의 식당이란 것은 새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주인의 세련된 감성을 보여주는 장소였다. 그 최초의 예를 장 프랑수아 드 트로이(1679∼1752)의 ‘굴 오찬’(1735)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림의 장소는 루이 15세 시절 베르사유궁 2층 사저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루이 15세가 직접 드 트로이에게 자신의 식당을 장식할 수 있는 그림을 의뢰했는데, 귀족들을 불러 모은 즐거운 오찬의 모습을 그려 선사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그림에 샴페인이 최초로 등장하는 ‘굴 오찬’
‘굴 오찬’의 위쪽 절반은 천고가 높은 식당을, 아래쪽 절반은 흥겹게 술과 음식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천장에서 기둥으로 내려오는 금색의 화려한 장식은 어느 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것이 없고, 천장의 둥근 프레스코화에는 봄바람의 신 제피르가 꽃의 여신 플로라에게 날아가고 있어 봄바람에 모든 사물이 꽃을 피우는 상서로운 의미를 담았다. 오른쪽으로는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금빛 조각들 사이로 한 여인이 보이는데, 머리에 조개장식을 올리고 돌고래 분수를 딛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비너스상이다. 천장의 휘돌아가는 모양과 더불어 바닥 타일의 배치 모양으로 볼 때 이 공간은 둥글게 설계돼 있을 것이다. 이 방은 왕의 사적 모임의 장소로, 마음에 맞는 귀족들이 모여 식사를 즐기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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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인물들은 술에 취해 흥겨움이 절정에 달한 듯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반, 서 있는 사람이 반인데, 각각의 행동은 저마다의 흥으로 요란스럽다. 여기 루이 15세의 초상도 보이는데, 왼쪽 붉은 코트에 붉은 레깅스, 프릴장식의 블라우스를 입은 이가 이 식당을 만들고 그림을 의뢰한 20대 초반의 젊은 루이 15세다. 여기에 적어도 다섯 명은 왕과 귀족들의 식사를 돕는 하인이다. 왕의 발 아래 무릎을 꿇은 파란 옷의 남자는 왕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굴을 까고 있다. 깐 굴은 하나씩 옆에 놓은 은쟁반에 담고 있으며, 그 은쟁반을 식탁으로 운반하는 이는 그림 가운데 회청색 옷의 남자다. 그 옆 바구니를 든 남자는 귀족들이 먹고 버린 굴껍질을 모으고, 의자 뒤에 무릎을 꿇은 이도 바닥에 떨어진 굴껍질을 주워 담는 궁정의 하인으로 보인다.
정갈한 타일이 깔린 바닥은 굴껍질과 널브러진 샴페인병으로,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테이블의 리넨 식탁보를 더럽히지 않도록 왕과 귀족들이 굴껍질을 바닥에 버리면서 먹고 있어서다. 이 작품은 사실 샴페인이 최초로 등장하는 그림으로, 음식의 역사를 거론할 때도 빠지지 않는다. 역시 굴의 풍미를 북돋우는 데는 샴페인이 적격이리라. 오늘날까지도 굴요리의 단짝인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부터인 것이다.
그림이 보여주는 흥청망청한 식탁 분위기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같이 끼어 신선한 굴과 샴페인을 즐기고 싶은 기분이 들게도 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장소에서 정치적 권모술수가 오가기도 했을 것이고, 각종 소문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인 루이 16세에 가서야 프랑스혁명을 맞았지만, 부르봉 왕가의 몰락 원인이 이 흥겨운 식탁 분위기에서 조금은 감지되는 것이다.
큰 성을 가졌거나 대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집안과는 달리, 서민의 식당은 여전히 단출했다. 드 트로이의 그림이 그려진 지 한 세기 반 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은 한 서민가족의 식당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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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아낀 고흐…등장인물 초상 수십점 그려
여전히 비좁고 어두운 집안. 천장의 낮은 서까래는 곧 무너질 듯 보이고 무질서하게 배치된 창문들 너머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다섯 명이나 앉기에는 작아 보이는 허름한 식탁에 어른과 아이가 모여 있다. 거실을 겸한 곳인 것처럼 보이는 이 식탁이 놓인 장소는 부엌 바로 옆인 듯하다. 오른쪽에 차를 따르고 있는 여인과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는 남성 사이에 생기다 만 벽 혹은 기둥이 있어서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데, 이 여인의 옆에 주전자가 놓여 있고 머리 위에 수저통이 걸린 것으로 볼 때 부엌 조리대 바로 옆에 식탁이 놓인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다. 식탁에 놓인 음식이라곤 감자 삶은 것과 음료가 전부다. 그래도 감자는 막 삶아내 더운 김을 뿜고 있고, 개인접시 없이 가운데 큰 접시에 담긴 감자를 함께 먹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색감은 흙이 묻은 감자 그 자체의 색을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이나 ‘아이리스’ ‘해바라기’ 등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원색에 익숙하다면, 이 그림이 조금 낯설 수도 있다. 그림은 프랑스로 떠나기 전,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작업하던 시절 반 고흐의 첫 마스터피스로 평가받는다. 반 고흐는 오히려 ‘별이 빛나는 밤’보다 이 작품에 더 큰 애정을 가졌다. ‘감자 먹는 사람들’을 위해 이 가족의 얼굴 각각을 별도로 그린 초상화를 수십 점 제작했을 정도로 그는 이 작품에 공을 들였고, 당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것에 속상해했다.
반 고흐가 이 가족의 식탁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고 비좁은 곳에 둘러앉아 있고, 먹을 것이라곤 감자밖에 없으며, 고생스러운 삶의 역경을 보여주는 거친 얼굴과 울퉁불퉁한 손을 가진 이들의 식탁에서 화가가 봤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가 보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데 모여 앉아 피곤했던 하루의 여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한 남성은 차를 따르는 부인에게 ‘고맙다’ 하고, 한 여성은 오늘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말하고, 아이는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며 저녁 한때를 보내고 있다. 식탁에 모인 이들은 가난하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일군 땅에서 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가족의 허름한 식당 그림에서 마치 예수의 마지막 만찬 그림에서와 같은 신성하고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은, 화가가 이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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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