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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경제가 예상보다 저조하다”면서 “모든 정책적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 프로그램 재가동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양적완화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돈을 뿌리는 특단의 조치다. 중앙은행이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을 쓴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4년간 총 2조6000억유로(약 3308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채권을 사들였고, 그만큼의 현금을 유로존에 풀었다.
유럽중앙은행은 효과가 있었다고 믿었다. 유로존의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말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온다.
유럽중앙은행이 또다시 프로그램 재도입을 시사한 것은 경기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중앙은행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로 내린 상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9%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더 낮췄다. 민간 투자은행인 BNP파리바는 유로존의 성장률을 1.0%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유로존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독일 연방 통계청은 지난 14일 독일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분기 마이너스 성장(-0.2%)에서는 벗어났지만 성장세를 회복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독일의 내수 소비가 탄탄하지만 수출이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독일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달한다. 대표 수출품인 독일 자동차사업의 부진과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수출이 고꾸라지면서 독일 경제가 휘청이는 모습이다.
채권시장은 유로존의 상황을 심각하게 반영하는 분위기다. 독일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현재 0.1% 밑으로 추락했다. 미국의 10년만기 국채수익률은 2.6%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경기가 나빠진 유로존을 부양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결국 완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셈이다.
박민수 NH투자증권 연구원 “유럽중앙은행이 사실상 통화정책 정상화를 중단하는 것으로 시장에선 판단하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