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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전재욱 기자] 신식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 본 서울 여의도 거리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미세먼지로 하늘은 뿌옇고 거리는 삭막했다. 연초부터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코스피 지수는 한 때 1980선까지 내려갔었다. 여의도 거리만큼 답답한 금융시장 환경에 KB증권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대표이사 박정림.
이달 2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출근은 증권처럼, 퇴근은 은행처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목소리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젊고 밝은 기운이 전해졌다. 3년전 KB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 시절, 반주로 소주잔을 기울였던 소탈함도 그대로였다.
경쟁 증권사가 IB부문(투자은행)에 잔뼈가 굵은 1인 대표 체제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KB증권은 은행지주회사 체제로서 다른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IB부문에서도 타 증권사와 발걸음을 맞추되 WM부문(자산관리)에 방점을 찍는단 계획이다. 우리나라 WM1세대 주자인 박 대표가 적임자로 꼽혔다. 증권사 최초 여성 CEO(최고경영자)이자 골수 증권맨이 아닌 증권사 대표란 두 가지 부담을 안고 있다고 했지만 박 대표가 가고자 하는 길은 분명했고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16일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증권업 전 분야에서 탑 티어(Top tier)가 되도록 하겠다”며 “실적이나 회사 인프라를 탄탄하게 했단 것을 보여줘야 ‘금’만 간 유리천장을 비로소 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은행 출신 강점 살린다..복합점포 늘려 WM 고객 모시기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현대증권을 인수할 당시부터 BoA-메릴린치를 모델로 내세웠다. 2009년 BoA가 메릴린치를 인수한 후 WM과 CIB(기업투자금융)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했듯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증권)을 결합한 ‘유니버셜뱅킹’형태다. 은행에 오랜 경력을 가진 박 대표가 2년간 KB금융지주, KB국민은행, KB증권의 WM본부장을 겸임하다 KB증권의 대표가 된 것도 이런 사업모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박 대표는 “BoA-메릴린치를 보면 WM도 IB와 함께 증권사의 중요한 축”이라며 “금융 그룹 차원에서 시너지를 내야 하는데 은행에 있다 왔으니 시너지를 잘 낼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통합하기 직전이었던 2016년말까지만 해도 WM 자산규모가 12조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작년말 20조4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이를 20조원 후반대로 확충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이를 위한 몇 가지 무기를 제시했다. 1분기 연 4~7%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 상품을 다양한 형태로 제공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하나의 바구니 안에 해외채권, 부동산 등 대체상품, 구조화 및 대출채권 등을 섞어 담아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이 나도록 하는 상품을 고객들에게 제시할 것”이라며 “자산관리의 기본은 분산인데 금융상품과 투자시간의 분산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집중된 고객 자산을 해외주식 등으로 넓혀가는 노력도 진행중이다. 원화로 해외주식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원마켓을 14일 오픈했다. 박 대표는 “환전수수료 받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고객들이 편하게 해외주식, 채권 등을 거래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발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작년말 65개로 늘어난 은행과 증권간 복합점포를 올해 10개이내로 추가 설립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복합점포는 굉장히 좋은 모델”이라며 “은행과 증권PB(Private Banker)가 함께 고객에게 포트폴리오를 짜주다보니 고객 자산 증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은 고객 관리에 강점이 있고 증권은 상품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유연하게 상품 공급이 가능하다”며 “이런 방식이 지난 2년간 증권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유휴자금을 턴키(Turn key)로 유치해 관리하는 OCIO(외부위탁 운용관리·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 사업도 강화해 수익원 다변화에 나선다. 박 대표는 “예전엔 법인 등에게 상품 단위로 접근했는데 이젠 법인마다 자기만을 위한 자산운용사를 하나씩 갖는단 개념으로 자금 전체를 운용해주는 OCIO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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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형 골드만삭스’ 바람이 불었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터지고 대마불사 논란이 커지면서 금융산업의 지향점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은행이든 증권이든 금융업은 자본력의 싸움”이라며 “자본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할 수 있는 딜(일)과 그렇지 않은 딜이 구분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가연계증권(ELS)의 발행도 자본력 좋은 몇 개 회사로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만큼 자본력이 탄탄한 몇 개의 초대형 증권사간 경쟁이 치열하고 그 가운데 전 분야에서 압도적인 1~2등을 하겠단 포부를 세웠다. 채권이나 파생 영업, 채권발행주관(DCM), 부동산 구조화 등 상위권 분야는 좀 더 강화하고 WM과 주식발행주관(ECM), 인수금융 등은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IB부문 등을 맡은 김성현 대표와의 협업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제가 2년간 WM을 겸직했고 그룹 리스크관리본부장(CRO)을 하면서 S&T(세일즈앤드트레이딩)쪽을 봐왔기 때문에 이쪽을 맡았고, 김 대표는 대한민국 최고 IB전문가로 IB와 IB랑 연관된 홀세일을 맡아 업무의 전문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표와 김 대표는 1963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박 대표는 “(김 대표가) 몇 달 빠르더라”며 “오라버니인데다 성격적으로 협업이 잘 될 것으로 보여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IB쪽에서 증권사 최초로 미국령인 괌 롯데호텔을 100% 인수한 건을 WM측면에서 고객에게 셀다운(Sell-down) 하는 등 IB와 WM(S&T 포함)간 협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 수평적 조직문화..‘여성 중간간부 층 탄탄하게’
박 대표가 KB증권을 이끌 수장으로 선임되고 나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박 대표는 “원래 좋은 DNA를 가진 조직이니까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 조직이 좀 더 창의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수평적 조직 문화의 전제 조건은 다양성이다. ‘여성 임원’ 탄생이 더 이상 화제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언제든 여성 임원이 나올 수 있는 여성 중간 간부층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KB증권에는 IB, 리서치, 금융소비자, IT 등 핵심 부서에 여성 부서장이 배치돼 있다. 괌 롯데호텔을 인수한 것도 여성 간부다.
실제로 박 대표는 은행 시절, ESG투자의 일환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에 투자하는 ‘메리츠우먼펀드’를 KB국민은행이 단독 판매하도록 유치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작년까지만 해도 4대 시중은행 중에 여자 부행장이 저 혼자 밖에 없어서 우울했는데 이번에 금융권에 여성 임원들이 많이 나왔다”며 “(펀드) 판매량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림 사장은...
△1963년 서울 출생 △1982년 서울 영동여고 △1986년 서울대 경영학 학사 △1991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1986년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 부장 △2004년 KB국민은행 시장운영리스크 부장 △2012년 KB국민은행 WM본부장 △2015년 KB금융지주 리스크 관리 책임자 부사장 겸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2017년 KB금융지주 WM 총괄 부사장 겸 KB국민은행 WM그룹 부행장 겸 KB증권 WM부문 부사장 △2019년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겸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