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중소기업을 위해 마련된 신고시스템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현재 설치·운영중인 신고시스템이 전형적인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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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애로 실태조사’에서는 응답기업의 49.3%가 ‘신고자 비밀 보장’을 불공정거래 대책에서 가장 시급하게 보완할 점으로 꼽았다. 신고자의 정보가 노출되면 거래 단절이라는 대기업의 보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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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중앙회와 15개 조합,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신고되 내용을 공정위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리 신고 방식을 이용해 익명성을 보다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각 조합과 중기중앙회를 통한 신고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익명제보센터가 운영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지난 19일 현재 익명제보센터를 통해 적발된 불공정거래는 전무하다.
익명제보센터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신뢰도도 낮은 수준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3.7%가 익명제보센터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익명제보센터가 익명성을 보장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울산에서 조선업체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B기업 관계자는 “신고센터가 아무리 익명성을 보장한다고 해도 대기업들은 어떻게든 신고한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한 시스템으로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제보센터를 운영하는 플라스틱조합 관계자는 “업체들이 익명제보센터에 대해 처음에는 솔깃해 하다가도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하면 모두 고개를 내젓는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익명제보센터 운영기관조차 익명제보센터시스템의 허술함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현재 익명제보센터는 특별한 시스템이 아닌 이메일을 통해 불공정거래 내용을 받아 보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조합에 따라 담당 직원이 없어 헤매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이 신고를 할 경우에는 처음부터 익명성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까지 보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별기업이 신고를 할 경우 내용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해주기가 힘들다”며 “중기중앙회나 조합을 통해 개별기업의 불공정 사례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중소기업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익명제보센터를 좀 더 홍보하고 메일이 아닌 전용 페이지를 만들어 접수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