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원작을 보면 대기업 임원이 중국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하 직원에게 충고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대세는 미국, 처세는 일본, 실세는 중국이라고. 중국어 공부해”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작가의 현실을 꿰뚫는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외환보유액 4조 달러, 미국의 70%에 육박하는 GDP, 14억 인구를 거느린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위상을 재치 있게 진단했다.
“대세를 알고, 처세를 익히며, 실세에 순응하는 것이 곧 세상사” 작가의 직관을 역학으로까지 연결시킨 어느 인터넷 논객의 평가를 곁들이면 우리가 더는 거스를 수 없는 중국의 존재감이 확증되는 듯하다.
다행히도 우리 경제는 지난 10일 ‘실세’ 중국과 FTA친구를 맺었다. 혹자는 ‘미생’이었던 양국의 경제협력 관계가 비로소 ‘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며 그 의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바둑에서 ‘완생’에 이르기 위한 여러 전략을 이번 FTA 의미에 덧대 보면 이런 평가도 무리는 아니다.
먼저 ‘공피고아’(攻彼顧我)와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고, 서로 어울리도록 움직이라는 바둑의 전략이다.
사실 한·중 양국은 오랜 역사를 함께해 온 만큼이나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제1위 교역·수출·수입 상대국이고 우리는 중국의 제3위 교역국이다. 양국 교역액만 2,289억 달러로 우리의 2·3위 교역국인 미국(1,035억 달러)과 일본(946억 달러)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다(2013년 기준).
문제는 최근 양국의 경제사정이 부쩍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한국경제는 내수시장 침체, 잠재성장률 하락 등의 우려 속에 엔저까지 덮친 상황이고, 중국 역시 부동산 침체와 그림자 금융 등 소위 차이나 리스크가 중국 경제 둔화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FTA는 양국의 자기고찰에 따른 위기타개책으로 서로의 호응 속에 도출된 필연적 결과물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중 FTA로 한국은 14억 소비시장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품게 됐으며, 중국은 GDP가 1~2%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자쟁선(棄子爭先)’과 ‘사소취대’(捨小就大)의 의미도 크다. 집 몇 개를 버리더라도 우선을 다투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한·중 FTA가 다른 FTA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체결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경쟁국인 일본이나 대만에 앞서 중국 시장 선점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 측면이다.
또한 이제 한국은 글로벌 3대 경제권(미국, EU, 중국)과의 FTA 네트워크가 완성돼 국제 투자 유치 확대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부가적으로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개성공단의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남북경협의 활성화와 통일기반 마련에도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한·중 FTA가 타결된 11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날이다. 개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지 정확히 13년 만에 세계경제의 ‘실세’로 한국과 FTA를 맺었다. 양국 간 경제협력이 ‘완생’의 길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마침 한국이 중국의 10번째 FTA 파트너. 숫자에 곧잘 의미를 부여하는 중국 민족에게 완전수이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