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매각안을 부결시켰다. 회사가 처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검토한 결과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의 결정 사항을 이사회가 거부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채권단과 정부는 하이닉스 이사회 결정을 놓고 맹비난을 했다.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하이닉스에 신규지원도 불가능하다고 엄포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3년 1월 SK하이닉스의 생산 전초기지 중국 우시(無錫)법인을 찾았다. 이재우 SK하이닉스 중국법인장(전무·사진)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만약 그 때 하이닉스가 매각됐더라면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 2위 위상의 SK하이닉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인장은 “SK하이닉스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던 예측을 깨고 현재 반도체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면서 “기업문화도 예전에는 ‘생존·극한경쟁’ 등 역경을 이겨내자는 문구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업그레이드 된 SK그룹의 ‘행복문화’로 발돋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은 작년말부터 공장 건물과 부지에 대한 사용권 매입을 진행중이다. 지난 2004년 중국 우시 시정부와 투자계약 체결시 장기임대 조건으로 사용을 허가받았는데, 2006년 양산 후 6년동안 수익금 중 일부를 유보금으로 꾸준히 모아 사용권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 법인장은 “초창기 중국법인에는 하이닉스 본사가 5억달러를 투입하는 등 지난 6년여 동안 라인을 가동하면서 총 70억달러(7조4000억원)가 투입됐다”고 밝힌 뒤 “회계상으로 봐도 하이닉스 본사 입장에선 이미 투자금을 회수하고 잘 운영되는 해외공장 하나를 남긴 셈이 됐으니 성공적인 투자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중국법인은 이미 스스로 EBITDA를 창출해 본사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수익구조를 이뤘다”고 덧붙였다.
이 법인장은 지난해 대주주가 SK그룹내 SK텔레콤으로 바뀌면서 시너지 효과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명절 때면 임직원들이 가족들로부터 들어왔던 “회사는 별일 없니”라는 걱정도 사라졌고, 신입·경력사원 채용에도 우수인력이 몰린다고 한다. 3500여명의 중국인 직원들도 SK그룹원이라는 자부심을 더욱 느낀다고 전했다.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의 열정도 뛰어나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전 이미 반도체 사업에 대한 학습과 전략수립까지 완료했다. 인수 후에는 중국법인에서 SK하이닉스 이사회를 개최할 정도로 현장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최 회장은 지난 2일에도 중국 베이징에서 임원들과 자리를 갖고, 중국에 또 다른 중국 기업 SK를 건설한다는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또한 올해를 SK그룹 반도체 사업의 새출발 해로 보고, 기업가치 300조원 목표중 중국사업 100조원 달성을 위해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이 크게 일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법인장은 “올해 중국법인 경영목표를 ‘불황에도 본사 흑자달성에 기여하자’로 정했다”면서 “본사 수익달성에 기여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최근 반도체 시장 플레이어도 줄어 예전과 같이 묵숨을 건 치킨게임 양상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반도체시장에 큰 쇼크만 없다면 수익 변동 폭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종전에는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따라 대규모 흑자 또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회사경영에 큰 타격을 줬지만, 앞으로는 흑자·적자간 고저(高底) 차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 법인장은 올해 1분기는 계절적 수요감소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세계 경제가 급변하지 않는다면 하반기 전망은 밝다고 내다봤다. 우선 공급량이 줄어 가격 안정화를 이뤘고, 중국내 모바일향 메모리 수요 증가세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이 법인장은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만이 20나노 제품을 주력 생산하고, 마이크론과 엘피다는 30나노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어 기술적으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신규투자 규모가 줄겠지만 신제품 위주의 생산과 라인 업그레이드에 주력할 방침”이라면서 “비용을 절감시키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법인장은 “중국법인 생산성은 이천공장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품질은 2% 부족한 상태”라면서 “올해는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자동화 비율을 높여 품질향상에 신경쓰겠다”고 덧붙였다.
품질문제는 직원 교육과도 직결된다. 중국법인이 2006년부터 가동됐음을 감안하면 중국인력 숙련공은 6∼7년 정도의 경력자다. 이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15∼20년 수준의 경력자와 차이가 있다. 때문에 중국법인은 인력 교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중국 직원은 인사승진에 제약이 있을 것이란 편견을 깨고자 중국인 파트장(과장급)도 선발했다. 또 차세대 중국 생산법인을 이끌어갈 중간 관리자 육성도 병행하고 있다. 수박 겉 핥기식 단기 연수만으로는 인력양성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판단, 작년 9월부터 1년간 한국 본사로 장기 파견해 조직문화·업무 프로세스 등을 체득시키고 있다. 첫 교육생은 지난 2005년 입사한 핵심 중국인재 5명이다.
이 법인장은 “중국에는 경쟁사에서 연봉을 조금이라도 올려준다고 제안하면 쉽게 직장을 옮기는 문화가 있다”면서도 “작년에는 다행히도 SK하이닉스 중국법인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지 않았다”고 밝혔다. 첫째는 글로벌 불황 여파로 중국 경제도 타격을 받으면서 이직을 권하는 경쟁사가 적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의 직원복지 조건이 이직률을 낮추고 안정적인 인력수급에 도움을 줬다는 판단이다.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은 무주택 임직원을 대상으로 무이자로 주택구입자금을 빌려준다. 집을 구입해 정착한 중국인들은 타지역으로 쉽게 이전하지 않는다는 습성을 노린 정책이다.
이 법인장은 또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西安)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함에 따라 인력유출을 우려했는데 다행히 걱정했던 일은 없다”면서 “삼성전자 시안공장에 따른 큰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법인장은 중국 반도체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의 역할론을 피력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004년 처음 중국법인 설립을 위해 협상을 진행할 당시 반도체 기술유출, 한국내 고용감소 우려 등으로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반도체 시장 성장세를 보면서, 당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소비량의 32%를 담당한다. 이중 10%p만 중국내 생산을, 나머니 22%p를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수입비중이 매우 높다.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은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량중 40%를 차지할 정도니 그 위상이 높다.
◇이재우 SK하이닉스 중국법인장은
이재우 법인장은 1958년생으로 영남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83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반도체사업본부에 입사했다. 96년 하이닉스반도체 미국법인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연구소 제품개발팀장, FAB운영팀장을 역임했다. 이어 2004년 상무보, 2006년 상무 승진했고 2008년부터 중국법인에서 근무중이다. 그는 현재 중국법인 현황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인물이자 오늘날 중국법인의 성장을 가능하게끔 한 주역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은 지난해 비트그로스(Bit Growth) 63%를 달성, 업계 평균 45%를 훨씬 뛰어 넘었다. 비트그로스는 메모리반도체의 성장률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각 메모리 용량을 1비트 단위로 환산해 성장률을 계산한 것이다. 첫 해에 256Mb 1개를 팔고, 그 다음해에 용량이 2배인 512Mb 1개를 판매한 경우 비트그로스는 100%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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