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11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
중국이 느닷없이 만리장성 길이를 2배 이상 늘리면서 고구려·발해 유적을 장성에 포함시켰는데도 우리 정부는 도리어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고자 설립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술 더 떠 중국을 두둔하는 듯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 정부는 민족의 역사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 5일 만리장성을 새로 조사해 보니 총연장이 2만1196.8㎞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세계가 인정해 온 길이 6000㎞쯤에 견주면 3.5배나 되고, 2009년 중국이 수정해 공표한 8851.8㎞에 비하더라도 2.4배인 어마어마한 수치다. 만리장성이 갖는 의미가 중국 국내에 한정된다면 이를 그냥 웃음거리로 삼으면 될 터이다.
중국,만리장성 길이 제멋대로 연장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중국의 역대 왕조가 대대로 쌓아 연결한 만리장성은 일종의 경계선 구실을 해왔다. 곧 만리장성 안쪽은 중국 영토요, 바깥쪽은 외국이라는 구분선인 셈이다. 따라서 중국이 만리장성의 연장(延長)을 확대한 사실은 주변 국가가 역사상 보유한 영유권을 부인했다는 뜻이며, 우리에게는 고조선,부여,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빼앗긴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이 이번에 발표한 ‘장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과는 다른 개념이라서 정부가 나설 문제가 아니라는 해괴한 소리나 해댔다. 또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8일 내놓은 보도 자료에서 고구려·발해사를 왜곡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근거는 다소 약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들은 “고구려가 남긴 유적도 만리장성에 포함된다”는 중국 언론의 공공연한 보도를 어떻게 해석할 텐가. 가해자는 내가 때렸다고 이미 인정했는데, 피해자가 “나는 맞은 일 없다. 상대방이 나를 때렸을 리 없다”고 겁먹은 소리 하는 꼴과 무엇이 다른가.
계속되는 정부의 저자세 외교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는 중국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저자세를 보인다. 민족사를 도둑맞으면서도 자기변명으로 일관한다면 무거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계기가 돼 2006년 설립한 기관이다. 그동안에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 재단은 이번 사태에서 스스로 ‘존재의 의미’조차 잊은 모양이다. 이러한 기관을 계속 남겨두어야 하는지 검토가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