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 | 이 기사는 05월 06일 14시 26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이데일리 김일문 기자] 우리나라 재벌가 회장님들의 야구 사랑은 유별나다. 수많은 구기종목 가운데서도 유독 야구만큼은 본인이 나서 직접 챙긴다. 개막전 관람을 위해 몸소 야구장에 출동하는 일은 예사고, 시즌 수위권 팀들간 자웅을 겨루는 가을 잔치 코리안 시리즈 중에는 관중석에 직접 나와 열띤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이는 각 야구팀 구단주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LG트윈스의 구단주는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고, 한화이글스 역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독수리들의 조련사를 맡고 있다. 두산베어스의 박정원 구단주(두산건설 회장)도 박용성, 박용만 등 야구 마니아 형님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야생 불곰들의 아버지를 자처하고 있다. 구단주는 말 그대로 구단의 주인. 실질적 경영을 맡는 사장과 선수 수급 등 각종 제반 업무를 처리하는 단장에 비해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거대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자가 구단주를 맡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당 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야구 열정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아홉번째 구단 설립을 선언한 김택진 엔씨소프트(036570) 사장은 구단주로서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김 사장은 자타공인 야구광인 자신을 공개석상에서 `베이스볼 키드`라고 소개할 정도로 야구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엔씨소프트 부사장이자 부인인 윤송이씨 역시 이번 야구단 설립에 적극 찬성했다고 하니 야구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거대 재벌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엔씨소프트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야구는 여타 스포츠와 달리 시간 제한이나 점수 제한이 없다. 불혹을 넘긴 노련한 투수라도 한 순간 실투하면 아들뻘 신인에게 홈런을 얻어맞는 게 야구다. 연륜이 많아 항상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새내기라고 매번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김택진 사장의 방점은 야구에 대한 열정도, 팀의 성적도 아니다. 정작 그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것은 최고 경영자로서의 판단과 결정이다. 현재 업계에서 추산하는 엔씨소프트의 초기 투자 비용은 KBO에 납부해야 하는 가입비와 예치금을 포함해 선수단 구성까지 약 500억 원 정도. 김 사장이 아무리 부자라도, 또 야구를 사랑하더라도 개인 지갑을 털어 야구팀을 만들리 만무하다. 다른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투자금의 상당부분은 결국 엔씨소프트의 출자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재 재무 상태를 감안할 때 500억 원의 투자금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투자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경영진에게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온라인 가상세계에서 위세를 떨쳤던 리니지의 주인공들이 좁은 모니터를 박차고 뛰쳐나와 그라운드를 누비며 야구단 운영 비용 이상의 홍보 효과를 발휘한다면 좋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야구팀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돈 먹는 하마가 되는 순간 주주들이 보내는 비난은 김 사장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야구팀 창단의 당위성이었던 오너의 애정은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야구단 창단을 너무 쉽게 결정한 것 아니냐는 화살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 공인구의 실밥 수는 108개. 그래서 혹자는 불가의 가르침에 빗대 야구를 108 번뇌(煩惱)의 스포츠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동시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하니 야전 사령관인 감독의 번뇌는 108개로도 모자라다. 김택진 사장도 마찬가지다. 구단주이자 최고 경영자로서 직면하게 될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무쇠팔 최동원`을 동경하며 야구를 꿈꿨던 베이스볼 키드가 아니다. 냉혹한 녹색의 다이아몬드에 스스로 몸을 내던진 그가 프로의 세계에서 베이스볼 어덜트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3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3호 마켓in은 2011년 5월2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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