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연극 '산재일기'를 봐야 한다

김보영 기자I 2023.06.12 05:00:00

문화대상 연극부문 심사위원 리뷰
이철 연출 '산재일기'
산업재해 다큐멘터리 연극…예술의 역할 다시 상기

(사진=류석호)
[마정화 드라마투르그] ‘산재일기’(4월27일~5월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이철 연출이 꽤 오랜 시간 공들여 했을 인터뷰를 정리, 발췌해서 만들어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지난 4월 말에서 5월 초 짧게 다시 공연됐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은 아주 늦은 리뷰다. 다만 이 리뷰를 언제가 될지 모르는 또 한 번의 재공연을 바라는 아주 이른 글로 읽어주길 바란다. 소재의 무게와 의미를 위주로 거론돼왔지만 ‘산재일기’는 사실 탄탄한 연출과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가 그만큼 인정받아야만 하는 공연이다. 그로 인해 소재의 무게가 제대로 전달되고 더 많은 의미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일 테니.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연극은 ‘산업재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극은 재해를 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관련자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쓰인 이야기를 두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인물을 재연하거나, 정보를 제시하거나, 또는 장면으로 구성해서 전달한다. 아주 많은 이야기가 무대에서 흘러나오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어느 하나도 산만하게 흩어지거나 허투루 무시되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모여 극을 더욱 단단히 만든다. 연극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공연이다. 그렇게 주제를 선명하고,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무대와 배우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연출이 만든 작품이다.

(사진=류석호)
(사진=류석호)
(사진=류석호)
시작할 때 무대에는 빈 의자들과 네모난 상자들이 놓여있고 산재 피해자들의 나이와 사연이 벽에 작은 글씨로 투사된다. 빈 의자는 관객들도 앉을 수 있는 의자다. 내가 본 공연에서는 관객이 그렇게 많지 않아 무대의 의자들이 빈 채로 진행됐다. 그리고 곧 두 명의 배우가 나와 직접적인 사례를 이야기하며 극을 시작한다. 처음 자신이 겪은 사고를 이야기하는 노동자를 연기하면서 배우들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한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아주 엄청난 일을 이겨낸 영웅들처럼 그 일을 재연한다. 잘못된 규제와 정부, 회사의 불법적인 대처로 그 영웅들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산업재해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마치 과거에서부터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연극은 어느새 여전히 열악한 현재에 도달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젊은 노동자와 청소년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왜 지금의 법이 아우르지 못하는지를 짚어낸다. 이때 배우는 무대의 큐빅을 얼기설기 세우면서 청소년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 장면에서 위태롭게 쌓인 큐빅은 청소년 노동의, 산재의, 그리고 현 사회의 상황을 날카롭게 가시화한다. ‘산재일기’의 모든 장면이 그처럼 효과적으로 낭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쓸데없는 신파에 머물지 않고 무대를 채워낸다. 그리고 아직 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걸 끝에 분명히 드러낸다.

‘산재일기’는 예술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또한 연극이 얼마나 탁월한 서술 방식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연출과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산재 일기’는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연극이라는 매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 꼭 봐야 하는 작품이다.

마정화 드라마투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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