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세대의 SNS 자기소개법... '한남더힐 OOO'

심영주 기자I 2021.07.06 00:30:08

고급 브랜드 아파트·부촌명으로 자기소개
‘주거 카스트제’...상대적 박탈감 및 위화감 조장 우려도
전문가 “한국사회 병폐 드러난 것...인문학적 교육 필요”

'트리마제 OOO' '한남더힐 OOO' '시그니엘 OOO'

최근 10~20대 사이에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고급 브랜드 아파트명을 기재해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화를 '신(新) 카스트제'에 빗대고 있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명을 자신의 SNS 프로필 란에 표시하는 것이 최근 102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사진=SNS 갈무리)




"유행이라 따라했을 뿐"...실 거주자 찾기 어려워

이같은 프로필 표시법은 소위 10~20대 '금수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문화였다. 최근에는 실제로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이들까지 동참하면서 정작 실 거주자는 찾기 어려워진 모양새다.

고급 아파트 명을 표시해 둔 당사자들은 단순히 유행이라 따라 해봤을 뿐, 실제 거주지를 프로필에 표시해 둔 경우는 주변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20세 A씨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길래 친한 친구들끼리만 팔로우 된 계정에서 웃자고 따라 해본 것 뿐"이라며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닐뿐더러 한남더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SNS 소개란에 '한남더힐 OOO'라고 적어둔 대학생 이모(20)씨도 "단순히 요즘 10대 친구들의 소소한 유행이라는 것을 보고 웃겨서 따라 해본 것"이라며 "(프로필에 표시해 둔)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연예인 이름이고 실 거주지도 한남더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주변에도 유명한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실 거주지를 써 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고등학생 양효경(18·여)씨는 "희망사항일 뿐 근처에 살지도 않는다"며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길래 혹해서 따라한 면도 있고 좋아하는 아이돌 숙소가 있는 곳이라 해뒀다"고 설명했다.



빈부격차 속 자랑과 무시 당연해진 사회

이들은 당초 이 같은 프로필 표시법이 시작된 이유를 부를 과시하는 풍조에서 찾았다.

이씨는 "요즘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평수에 따라 친구를 골라 사귀고 왕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과시와 무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유한 이들의 심리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여기에 요즘은 온라인을 통해 본인의 집을 자랑하는 영상도 많이 공개되고 있고, 동시에 선망하는 듯한 댓글도 많이 달리는 걸 볼 수 있다"며 "다양한 형태를 통해 빈부격차에 대한 생각과 타인에 대한 무시 등이 내재화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양씨는 "부자들은 자기 자랑으로 설정해 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통 사람들은 그저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 생각한다. '소확행'처럼 소소하게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아는 '주거 카스트제'"

문제는 이같은 문화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엘거지'(LH 아파트와 거지를 합성한 말) '휴거지'(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성한 말) 다 구별할 수 있는 세상"이라며 "열심히 돈 벌어 최소 수도권 상급지 구축이라도 들어가야한다"는 씁쓸한 반응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고급 아파트 명을 SNS 자기소개란에 표시하는 문화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사진=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권은진(27·여)씨는 "그야말로 '신(新) 카스트제' 아니냐"며 "천박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권씨는 이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과 노골적으로 본인의 부를 과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차별적 과시...어렵지만 교육 통해 해결해야"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문화를 '차별적 과시 현상'이라며 "한국 사회의 병폐가 다시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과거 아파트를 소개할 때 ‘고품격’ 등의 수식어를 쓰거나 옥상에 야광등을 설치해 아파트의 위용을 드러내는 등의 방법처럼 우월감을 차별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과시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주거지나 직업 등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사람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모멸 받지 않기 위한 일종의 장치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처럼 공개된 공간에서 이 같은 표현이 이뤄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 교수는 “문화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도 "어렵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삶의 가치가 경제, 자본 등에 의해 쉽게 평가될 수 없다는 내용의 교육을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많이 이뤄져야 한다. 즉 인문학적, 철학적 교육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복지 시스템도 잘 갖춰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일종의 부분적 해법이지만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삶의 질이 확보돼야 한다"며 "복지 시스템의 강화 등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냅타임 심영주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