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경찰이 주취자를 제압하는 현장에서 여성 경찰(여경)이 구경만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경 무용론’에 또다시 불이 붙고 있다.
경찰청은 매뉴얼을 따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매뉴얼 따랐다는 해명에도...또 ‘여경 무용론’
지난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며칠 전 여경, 구경하는 시민인 줄’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공개된 게시물 속 사진에는 남성 경찰(남경)이 주취자를 바닥에 눕혀 제압하고 있다. 남경은 제복이 헝클어져 안에 입은 하얀 속옷이 보이는 상태라 제압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여경은 옆에서 휴대폰으로 현장 상황을 촬영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여경은 구경꾼이냐”며 비난을 이어갔다.
간혹 “채증하는 거면 딱히 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누리꾼은 “적어도 한 손으로라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바디캠은 어디 있냐” “세금이 아깝다”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경찰청은 ‘대응 매뉴얼대로 행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의 해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되레 "동료 경찰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매뉴얼대로 채증만 해야 하는 거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여기에 현직 남경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직장인 커뮤니티에 "자꾸 채증, 채증거리는 데 얼 타는 실습생들조차도 그런 사람 한 명도 없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여경 무용론'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20대 남성 김모씨는 "여경 무용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들의 업무가 치안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시험 기준이라거나 업무 수행 등을 남녀가 동일하게 수행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20대 여성 박모씨는 "현실적으로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땐 여경보다는 남경이 믿음이 갈 것 같다"며 "성별 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고 전했다.
개인의 문제→집단 문제로 치환 말아야
반면 일각에서는 개인의 문제를 여경 전체의 문제로 봐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의도적으로 성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고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매뉴얼대로 했는데도 잘못이라면 해당 경찰을 욕할 것이 아니라 매뉴얼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유독 여경에게만 성별을 이유로 도매급으로 욕하는데 그야말로 혐오이자 성차별"이라고 일갈했다.
김모(26·여)씨는 “최근 불거진 경찰들의 스토킹이나 성추행 등을 봐도 남경은 범죄를 저질러도 경찰이라고 하지 남경의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지 않느냐”며 “일부 누리꾼들이 여경이라 지칭하며 지겹도록 젠더 갈등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따지면 남경 무용론이야말로 나와야 하는 말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여경 무용론은 종종 불거지는 논란이다.
지난해 '대림동 여경' 사건부터 지난 4월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경들이 시위자를 제지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또 한번 촉발됐다. 해당 영상에서는 여경 9명이 시위자 1명을 둘러싸며 제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꿀벌 진압'이라는 조롱까지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논란들은 여지없이 성별 갈등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들은 여경을 향해 '치안 조무사' 등과 혐오 표현도 여과 없이 사용하며 성별과 직업을 한 번에 비하하기도 했다.
이에 간호조무사협회는 조무사 명칭을 실무사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생산성 없는 논쟁...성 역할 평등주의 의식 키워야"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상대 성(性)이 인식하지 못했던 피해와 고충을 알리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서로 간의 비난과 조롱이 생산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쟁은 끝이 없는 전쟁인 것 같다"고 우려했다.
곽 교수는 그러면서 "성 역할 평등주의 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성 역할 평등주의 의식이란 성별이 개인의 권리나 능력, 의무, 기회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어릴 때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습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녀는 행동과 능력 등에서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이런 것을 서로 인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도 평소 성 역할에서 평등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평등한 사고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심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