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당장 궁금한 것부터 해결하고 가자.
“한국에 대한 느낌이 어떤데?”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가가 될 거라 생각한다. 10년 내로, 길어 봤자 20년 내로.”
“아시아에 부는 훈풍, 정말 그런가?” “물론이다. 다만 그냥 불진 않는다. 20세기 가장 성공했다는 미국이 그러지 않았나. 내전, 대공황, 소수의 인권, 세부적인 법 규정. 이들 문제가 똑같이 떠오를 거다.”
“한국과 북한에 엄청난 기회가 오고 있다고?” “곧 중국 국경과 맞닿은 8000만명의 나라가 존재하게 될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회가?” “북한에는 값싸고 훈련·교육돼 있는 노동력,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다. 한국에는 거대한 자본과 경영기술이 있고.”
“일본은 인정 못하는 분위기던데….” “남북이 결합한 새로운 한국과 경쟁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당연히 이런 상황엔 반대하고 싶을 거다.”
“다른 국가들은?” “한국과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한반도의 새로운 진전에 찬성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의 위험은?” “만에 하나 전쟁이 난다면 한국은 아무리 중립을 지키고 싶어도 휘말릴 수밖에 없을 거다. 한국의 진정한 비핵화는 실질적인 핵무기를 보유한 미군이 떠나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괌·오키나와에 있는 미국 핵무기가 5분 내 이륙할 텐데. 한국은 사실상 원하는 만큼의 핵무기를 가진 셈이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다이내믹한 한반도에 가장 극적인 변화가 ‘곧’ 일어날 텐데, ‘남북통일’이 그것. 중국 국경에 살을 맞댄 8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형국가가 탄생할 거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몸집까지 키운 셈이니 어찌 흥미롭지 않겠나. 다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적잖이 험난할 수 있는데. ‘핵’이 그 한 가지. 북한 핵이 아니다.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진짜배기, ‘미국 핵’이다.
중요한 사안인 데다 첨예한 관심거리라 묻긴 했는데 기대만큼 어마어마한 답변은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배에 힘 한 번 주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소리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대충 흘려듣지 않고 꾹꾹 눌러 챙긴 건 이 말을 한 ‘인물’ 때문이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77)다.
△투자는 현장서 배워야…책에 봐서는 ‘꽝’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줄기는 당연히 ‘투자의 정석’이다. 굳이 북한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는, 세계정세라 부르는 정치·경제 긴급변수를 기꺼이 초월한. 그 방점을 로저스는 ‘거리’에 찍었다. 투자라는 게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거리로 나가 현장에서 배우는 거란 주장을 애써 책에 새긴 것이다. 머리만 굴리지 말고 몸을 쓰란 얘기기도 하고, 남이 써놓은 대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인 보폭에 따라 결정된다는 얘기기도 하다.
예전 집필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책은 ‘완전체’다. 좋게 말하면 일관된 투자전략이 살아 있어서고, 비딱하게 말하면 이미 검증이 끝난 옛날 스토리라서다. 딱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며 동쪽 끝 북한에 대해 언급했던 부분. 북한 스스로가 만든 국면, 세계가 북한을 보는 눈, 게다가 ‘밀당’을 할 만큼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자세·관계가 그새 많이 달라졌으니까.
‘북한에는 증권시장이 없으니’라며 북한투자를 암시한 것도 이미 5년 전이다. 그러니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눈여겨볼 건 북한 개방으로 이득을 얻을 중국기업이나 아시아기업일 거라고 했다. 낙관하는 분야는 공장·호텔·음식점·관광 등. 세심하게는 결혼을 못하고 있는 한국 남성에까지 마음을 썼다. 멀리서 아내감을 찾을 게 아니라 북한에서 찾으면 될 날이 곧 온다고.
△해는 ‘여전히’ 동쪽서 떠오른다
비단 4200% 때문만은 아닐 거다. ‘무림고수’의 면모를 드러낸 에피소드가 여럿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장붕괴 전 모든 주식을 현금화했다든가, 중국 상하이에서 한 해 여름을 보내고 (무엇을 봤는지) 아예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를 했다든가, 미·중 무역전쟁 발발을 예견하는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수차례 경고했다든가.
투자자의 덕목이라 할 호들갑스럽지 않은 여유가 돋보이는 지점은 ‘위기관리’다. 잘 피해 간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 없는 기독교’라고 비유했으니. 결국 경험일 거다. 초년병 시절 섣부른 공매도로 알거지가 됐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당신의 증거금보다 시장의 광기가 더 오래간다”는 월스트리트 격언이 뼈아프더라고도 했다. 강세장에서 내가 똑똑하다고 착각하지 말라며, 정말 똑똑하다면 왜 진작 부자가 되지 못했겠느냐는 쓴소리도 보탰다.
책은 어렵지 않다. 폼 잡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낸 미덕이 돋보인다. 망했던 사연, 흥했던 사연을 사생활까지 보태가며 엮어낸 덕이다. 또 가볍다. 행간을 읽으려 고심하거나 마음을 뺏겨가며 몇 번씩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좀 얄밉기도 하다. 누구는 죽기 살기로 덤비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복잡하고 흥미로운 시간이 다가온다”로 일축할 만큼, 그는 결국 투자자니까. “모든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여기저기 던졌을지언정, 어디에 어떻게 투자한다는 후속멘트 한 줄 뾰족한 게 없으니. 어쩌겠나. 한 번 더 믿어 볼밖에. 한반도 통일이 코앞이라니. 그가 인용한 버핏의 말대로 “썰물이 빠져나가야 누가 벌거벗고 헤엄치는지 드러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