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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작가 전병현이 '발기발기' 찢는 이유

오현주 기자I 2017.06.27 00:10:00

개인전 ''어피어링 시리즈''
색 입혀 6번 배접한 한지 찢어서 완성
"의도한 찢음으로 원초적 색 찾는 것"
나풀거리는 입체감 ''회화로 만든 부조''
9m여 대작 등 인물·정물·추상 40여점
7월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전관 전시

작가 전병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연 개인전 ‘어피어링 시리즈’에 건 자신의 작품 ‘어피어-남자’(2015) 앞에 섰다(사진=가나아트).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시종일관 유쾌한 그에게 과연 ‘찢는’ 행위란 게 필요할까. 찢는다는 건 흔히 이상행동의 대표징후처럼 여기지 않았나. 그런데 그는 ‘대단히 정상’ 아니 그 이상으로 보인다.

중견작가 전병현(60)은 멀쩡한 한지를 찢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과정은 이렇다. 먼저 두꺼운 한지를 틀에 붙이거나 바닥에 깔고 그림을 그린다. 그 위에 다른 한지를 붙이는 ‘배접’을 하면 하얀 면이 또 드러나는데 그러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이 단계가 보통 6번이다. 이렇게 겹쳐 붙인 한지가 완전히 마르면 그때 찢어내기 시작한다. 얼마만큼? 원하는 색이 속살처럼 올라올 때까지, 6겹으로 그린 그림이 형태를 갖출 때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는 열고 있는 개인전에서 만난 전 작가는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찢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두툼하게 배접한 한지를 손가락으로 ‘예쁘게’ 찢는다. 철저히 의도한 찢음이다. 속에 뭐가 있을까 찾아내듯이. 찢으면서 원초적인 색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한 평면, 가로길이가 9m에 육박하는 ‘어피어-연회’(2017)를 비롯한 40여점을 ‘어피어링 시리즈’(Appearing Series)란 주제로 묶었다. 개인전은 7년 만이다.

전병현 ‘어피어-수영’(2017)(사진=가나아트)


서양에서 말하는 콜라주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좀 다르다. 콜라주가 쉼 없이 붙여내는 작업이라면 전 작가의 작업은 찢어내는 거니까. 벌써 5~6년쯤 됐다. 엄지와 검지만으로 찢다 보니 두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란다. 그렇게 찢은 한지는 나풀거리는 입체감을 만들며 꽃이 되고 사람이 되고 풍경이 되고 추상이 된다. 마치 회화로 부조를 만드는 것처럼.

그렇다면 전 작가를 ‘한지부조작가’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까. 사실 그는 팔색조에 가깝다. 한때 화제가 됐던 ‘눈 감은 초상화’는 그이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2001년부터 인터넷에서 대중과 소통한 결과인 ‘싹공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글과 그림이 있는 화가의 일기장으로 출판한 것이 벌써 3권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고집하는 것이 있으니 전통한지다. “스며드는 게 좋아서란다.” 그러면서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를 역설한다. 서양화는 겹쳐나가는 그림이지만 동양화는 스며드는 그림이 아니냐고.

전병현 ‘어피어-연회’(2017). 가로길이가 880㎝에 달하는 대작이다(사진=가나아트).


화가인생으로 40년이 넘었다. 17살부터 그림을 그렸단다. 고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탓에 대학 진학을 못했다. 36개월을 꽉 채워 군대를 다녀온 뒤 별 생각없이 응모한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턱 하니 대상을 차지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고졸 출신으로 대상을 받아 다시 대학가기도 뭐하고 아주 어정쩡해진 상태”로. 그 어정쩡한 인생은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진학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1983년 서울 인사동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이 후원자로 나선 거다. 그때의 ‘길거리 캐스팅’ 인연을 그는 지금도 고마워한다. 그런 그도 억울한 게 있단다.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면 군대도 면제해주던 시절인데….” 바로 군 면제를 못 받은 것이다.

전 작가의 바람은 ‘오로지 색으로 남고 싶은’ 거란다. “색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푸른 바다도 손에 담으면 색이 없지 않나. 색맹이면 미술을 못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어차피 색은 주관적이니까.” 40년 내공으로 “나답게 찢는 일”도 당분간 계속할 모양이다. “세계에서 한지를 발기발기 찢는 작가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다.

전병현 ‘어피어-고요한 인생’(2017)(사진=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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