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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부모님께 도움 청해라”..둥지 못트는 신혼부부

김성훈 기자I 2016.02.15 05:00:00

중소형 전셋값 올 들어 0.2% 상승
오피스텔도 속속 전세→월세 전환
선계약금 안걸면 집구경도 어려워
매물 찾아도 계약과정서 철저한 乙
계약 깨질라 벽기 교체 요구 못해

△ 예비부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수도권에서 저렴한 아파트 전세 물건이 자취를 감춘데다 오피스텔과 빌라(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 전셋값까지 치솟아 신접살림을 차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내 연립·다세대 주택 밀집지역 전경 [사진=김성훈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부모님께 1억원만 더 도와달라고 해보세요. 가격대가 올라가면 전셋집을 구하기가 수월해질지 몰라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컴퓨터로 전세 매물을 검색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는 6월 결혼을 앞둔 직장 5년차 정진석(33)씨에게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다. 지난해 말부터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원하는 신혼 전셋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계속된 헛걸음에 서서히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정씨는 예단과 사진 촬영, 신혼여행 비용을 줄이고 여자 친구와 돈을 모아 7000만원을 마련했다. 부모님은 모아둔 돈 5000만원을 주시며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은행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 5000만원까지 합쳐 총 1억 7000만원을 마련했다. 정씨는 주말이 되면 서울시내 아파트·오피스텔·빌라 등을 가리지 않고 전셋집을 찾아다녔다. 하루 동안 10곳 넘게 방문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아파트 전세는 씨가 말랐고 그나마 전세로 놓던 오피스텔도 모조리 월세로 돌아선 상황”이라며 “전세 대신 모아둔 돈을 보증금으로 걸고 매달 30~40만원 내는 월셋집을 알아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했다.

◇전세난에 예비부부 ‘내 집 찾아 삼만리’

전세난에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수도권에서 저렴한 아파트 전세 물건은 자취를 감춘데다 오피스텔과 빌라(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 전셋값까지 덩달아 치솟아 신접살림을 차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중개업소 방문 전부터 전세 계약금을 거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됐다. 더구나 전세자금 대출이나 입주 전 수리 등을 요구하면 계약하지 말자는 경우도 있어 신혼부부의 전셋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설 연휴 전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한 주 새 0.09% 올랐다. 서울의 경우 2012년 7월 첫째 주(-0.01%) 이후 3년 7개월 동안 아파트 전셋값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67.5%로 2009년 1월 이후 7년 넘게 연속 상승했다. 오피스텔도 전세가율이 76.5%로 역대 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최근 서울 시내 집값이 겨울철 비수기와 공급 과잉 우려감에 보합 상태이지만, 전셋값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 전용면적 60㎡ 이하 중소형 아파트의 경우 전셋값이 올 들어 0.21%나 뛰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공인중개사는 “중소형 아파트 전세를 찾는 수요는 많은데 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집세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얼마 남지 않은 전셋집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 가을 결혼을 계획 중인 우모(32)씨는 최근 경기도 부천에 있는 1억 2000만원짜리 빌라 전셋집을 보기 위해 나서던 중 공인중개사로부터 이미 전세계약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씨는 “중개업소에서 선계약금을 걸지 않으면 집 구경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번 기회에 7000만~8000만원을 더 투자해 빌라를 장만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집 수리 요구에 “싫으면 계약하지 마라” 엄포

전셋집 찾기에 성공해도 계약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조모(여·30)씨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 2억원짜리 빌라 전셋집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현관문이 잘 열리지 않아 집주인에게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집주인은 “이전 세입자도 그 상태에서 잘 살다가 나갔다”며 “직접 고치던가 아니면 다른 집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고양시 원당동 D공인 관계자는 “최근 집주인과 세입자가 계약하는 과정에서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다고 하면 계약하지 않겠다는 집주인도 많다”며 “이 때문에 벽지 교체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집을 계약하는 신혼부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수도권 일대 전세난은 앞으로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이주 수요가 늘고 있는데다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도 빨라지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신혼부부 등 젊은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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