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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료원의 개원 멤버인 양 대표는 누구도 관심갖지 않던 탯줄에서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 난치성 질환 환자들에 희망을 띄웠다.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활용한 연골재생 치료제를 개발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벤처 기업이 하나 둘 쓰러지는 척박한 현실에서 맨 손으로 창업한 기업을 16년째 경영하고 있다. 한때 ‘공상 과학소설을 쓴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회사는 어느덧 시가총액 7000억원대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메디포스트(078160) 본사에서 만난 양 대표는 특유의 상냥하고 자신있는 어조로 “아직 해야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양 대표는 지난 2000년 삼성의료원 임상병리과 전문의로 재직하던 중 제대혈 은행 설립과 줄기세포 분야 상업적 연구 필요성을 절감하고 메디포스트를 창업했다. 국내 기업 중 메디포스트가 처음으로 제대혈 사업에 도전했다.
제대혈 은행은 신생아의 탯줄에서 채취한 제대혈(탯줄혈액) 내 조혈모세포와 줄기세포를 분리, 보관했다가 치료가 필요할 때 다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제대혈은 백혈병, 소아암, 재생불량성빈혈, 고셔씨병, 류마티스 등 각종 난치병 치료에 쓰인다. 최근에는 뇌성마비나 소아당뇨에까지 치료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산모가 약 100만~200만원의 비용을 내고 제대혈 보관을 의뢰하면 제대혈 은행이 이를 보관했다가 추후 난치병이 발생하면 치료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메디포스트는 지난 2005년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는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자가 제대혈 이식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총 500여건의 제대혈을 난치성 질병 환자들에 이식했다.
누구에게나 ‘최초’는 쉽지 않은 도전이듯 양 대표의 사업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환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번호표를 서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들에게 제대혈에 대해 설명하는 나날을 반복했다. 메디포스트의 제대혈 은행인 ‘셀트리’는 현재 21만여건의 제대혈을 보관 중이며 국내 시장 점유율 43%로 1위를 독주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를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계기는 줄기세포치료제다. 메디포스트는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줄기세포치료제 ‘카티스템’의 허가를 받았다. 카티스템은 다른 사람의 몸에 있는 세포를 이용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동종줄기세포치료제다. 무릎관절이 손상되면 최종적으로는 인공관절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카티스템을 투여하면 손상된 세포가 재생되는 방식이다. 카티스템은 시판 이후 현재까지 2500여명의 환자에 투여되면서 줄기세포치료제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카티스템은 홍콩, 호주, 인도 등에도 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실제로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해 1월 카티스템을 시술받고 퇴행성관절염 완치 판정을 받으면서 카티스템은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현재 테니스와 같은 격렬한 운동도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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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규모는 400억원대 수준이지만 메디포스트는 창립 이후 단 한번도 ‘외도’를 하지 않고 제대혈, 줄기세포 분야에만 매진해왔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주력 사업을 수시로 바꾸는 현실에서 주목받을 만한 행보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기업가정신 주간’ 국제 컨퍼런스에서 세계적 창조경영의 대가인 라피 아밋 미국 와튼스쿨 교수는 한국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기업으로 메디포스트를 지목하기도 했다. 아밋 교수는 “미국의 애플과 견줄만하다”고 평가했다.
-안정된 직장을 나와서 창업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삼성의료원에서 진단검사의학과(옛 임상병리학과) 교수 겸 전문의로 재직할 당시 백혈병이나 소아암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이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서 가족 제대혈은행과 난치성 질환 치료 연구와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8년 삼성의료원이 제대혈은행을 설립했는데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은 병원보다는 민간 차원에서 제대혈은행을 직접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창업을 결심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다른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았다. 막상 사업을 시작해보니 제대혈은행은 검사장비, 냉동장비, 연구실 등 돈이 많이 필요했다. 최초 엔젤투자를 받아서 13억원으로 시작했는데, 설비투자에 모두 투입됐다. 메디포스트를 창업할 당시 벤처 창업 열기가 꺼져가는 상황이어서 창업투자회사들도 투자를 꺼려했다. 당시 제대혈이나 줄기세포가 생소하던 시절이어서 공상과학 소설을 쓴다고 투자자들이 외면했다. 2001년 산업통상자원부의 국책과제에 선정되면서 극적으로 수십억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투자를 이끌어낸 것은 카티스템의 개발 프로젝트였다. 정부 지원을 받고 책임감을 갖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 카티스템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카티스템의 상업성은 어떠한가.
△우리가 개발했지만 카티스템은 당초 기대보다 더 좋은 제품인 것 같다. 현재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 문제로 성장은 더디지만 카티스템을 접해 본 의료진들은 만족을 한다. (카티스템의 시술 비용은 약값과 치료비를 포함해 1000만원 안팎이다.) 카티스템을 허가받을 때 103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시판 이후 2500여명이 시술 받으면서 장기 추적 결과도 나오고 있다. 전반적으로 결과는 만족스럽다. 어차피 성공하려면 타깃은 글로벌 시장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나.
△히딩크 감독의 경우 퇴생성관절염을 앓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의료진이 인공관절을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골프나 테니스와 같은 격렬한 운동을 계속하고 싶어했고, 한국과의 인연으로 또 다른 치료법을 수소문한 결과 한국 의료진이 카티스템을 추천했다. 시술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얼마 전 히딩크 감독이 저녁 자리에 초대해줘서 만났는데 카티스템에 대해 ‘미라클(Miracle)’이라고 추켜세우며 고마워했다.
-또 다른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현재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매치료제 ‘뉴로스템’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동물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치매는 꼭 정복해야 할 숙제다. 개인적으로도 건강한 장수를 위해 뉴로스템의 개발이 꼭 성공했으면 한다. 폐질환 치료제 ‘뉴모스템’은 미국에서도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기업이 상업적 임상시험에 들어가면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계획 없이 추진하는 것은 재앙이 될 뿐이다. 단계적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할 계획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자가 제대혈을 사용되는 확률이 극히 낮다며 제대혈의 유효성을 문제삼는 목소리도 있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제대혈 은행이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왜 운영하겠는가. 제대혈은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악재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인데, 단순히 사용확률로 문제삼는 것은 옳지 않다. 당사자에게는 난치병이 전부일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혈로 난치성 질환에서 벗어났다. 점차 제대혈 줄기세포를 통해 치료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제대혈의 활용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의 목표.
△이미 재생의료라는 분야갸 인류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메디포스트도 재생의료 분야를 선도하는 업체로서 책임감을 갖고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의약품 사업 특성상 상업화에 시간과 돈이 많이 투입되지만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치료제로 1명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보람이다. 연구개발(R&D) 부문 투자비중이 높은 탓에 수익성이 좋지는 않지만(작년 매출 대비 R&D비용 26.9%) 지속적인 투자로 메디포스트를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표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 2020년에는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
양윤선 대표는 1964년 출생으로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병원 임상병리과 전공의를 거쳐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로 임상병리과 전문의 및 성균관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지난 2000년 메디포스트를 설립했고 2012년 줄기세포치료제 ‘카티스템’의 국내 허가를 받았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첨단의료복합단지위원회 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고려대학교 생명과학가 겸임교수, 한국바이오협회 이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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