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소리지? 8시간의 진통 후 무통주사를 맞고 잠시나마 긴장이 풀린 내게 던진 의사의 한마디였다. 양수가 터졌는데 투명해야 하는 양수색이 이상하단다. 태변이 뭔지 이해하기도 전에 내 침대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태아의 변인 태변은 생후 48시간 내에 처음 배출되는게 정상이지만 태아가 분만과정 중 태내에 배출할 경우 태변을 먹게 돼 호흡곤란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TV에서 봤던 수술방의 새하얀 조명이 켜지고 눈앞에는 초록색 천이 펼쳐졌다. 내 배 위로 바쁘게 움직이던 차디찬 알콜솜과 달리 내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기 낳는 순간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지금까지 죽도록 진통한 것에 대한 억울함, 먼가 잘못될 수도 있을거라는 두려움 등의 감정이 뒤엉켜 눈물로 떨어졌다. 극한의 고통 끝에 만나는 내 자식과의 첫 대면을 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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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코앞에 둔 임신 10개월째로 들어선 주변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꿈을 자주 꾼다는 거다. 어떤 친구는 전쟁이 나는 꿈만 일주일째고, 또 다른 친구는 쫓기는 꿈을 계속 꾼단다. 이처럼 임신 막달은 사람의 배가 이렇게까지 부풀어오를 수 있다는 인체의 신비에 놀라는 동시에 머릿속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끝없이 따라다니는 시기다. 나역시 그랬다. 밤만 되면 침대에 누워 임신·육아 카페에 접속해 출산후기만 폭풍클릭하며 출산 예행연습을 했다. 진통 오면 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게 출산가방도 미리 싸서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일찌감치 진통을 체크해주는 앱도 스마트폰에 설치해놨다. 혈액순환이 안돼 자꾸 쥐가 나는 다리를 부여잡으면서도 출산 예행연습은 계속됐다. 그럴 때면 옆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세상 편하게 자는 남편이 얄밉기만 했다.
문제는 그 때 내가 클릭했던 수많은 출산후기가 모두 ‘자연분만’에 한했다는 거다. 그렇기에 더더욱 제왕절개에 대한 정보는 백지 상태였다. 임산부 요가도 열심히 했고 그 좋다는 케겔운동(괄약근 수축·이완 운동)도 부지런히 했는데 왜 나는 자연분만을 못했는지 이해가 안갔다. 운동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유도분만을 괜히 했나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도분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응가를 했다는게 내 수술의 주된 이유였다. 결국 내 기준에서 자연분만은 복불복이었다.
제왕절개는 고통 없이 아기를 낳는 대신 아기를 낳고 나서 느끼는 고통이 자연분만의 진통에 버금간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수술까지 한 나는 엄마들이 말하는 최악의 케이스인 셈이다. 생살을 찢어놨으니 아픈건 당연하다. 자연분만 산모들은 출산 당일에도 가뿐하게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는데 제왕절개 산모는 대개 수술 당일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걸을 수도 없다. 출산 직후 신생아실에 있는 내 새끼의 모습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지난 10개월 동안 머릿 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던 나의 첫 출산은 소변줄에 진통제가 주렁주렁 달린 침대 위에서 맞이했다. 물론 출산의 기억을 곱씹어볼 새도 없이 ‘모유수유’라는 험난한 산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