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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글로벌 제로섬게임`

이정훈 기자I 2014.03.18 06:00:02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전체 주민 200만명인 자그마한 자치공화국 크림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세계간 패권 다툼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급기야 크림 자치공화국 주민들은 90%가 훨씬 넘는 압도적 지지로 자신들의 러시아 귀속을 결정했다. 이제 크림을 자국 영토로 귀속시키려는 러시아의 작업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압박만 남은 셈이다.

러시아는 오는 21일 크림 병합 절차를 위한 심의를 하는 등 크림 자치공화국과 러시아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귀속절차를 마무리 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EU는 러시아 고위 당국자들과 군장성, 재계 인사까지 여행을 금지시키고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크림반도 상황이 정면 충돌을 두려워해 먼저 자동차 핸들을 꺾는 쪽이 지고 마는 일종의 치킨게임(Chicken Game)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런 대치국면이 지속될 경우 양측은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까지 엄청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때 브라질, 인도, 중국과 함께 글로벌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4대 신흥국 ‘브릭스(BRICs)’의 일원이었던 러시아 경제는 이미 바닥권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1.5%라는 저조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머물렀던 러시아는 올해 잘해야 1.0% 정도 성장할 전망이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작년 6.7%까지 치솟았고 올해는 7%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러시아 중앙은행은 저조한 성장률에서도 이달 기준금리를 1.50%포인트나 대폭 올리는 강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서구사회로부터 추가 제재를 당해 경제적으로 고립된다면 버틸 재간이 없다. 전체 세수의 70% 가까이를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벌어들이는 러시아는 이중 50%를 EU로부터 충당하고 있다. 전체 외국인 투자의 75%도 EU 몫이다.

더구나 루블화는 올들어 11% 이상 추락했고 국채 금리는 사상 최고 수준을 찍었다. 주식시장도 올들어 11% 급락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렇듯 어려워질수록 미국과 EU 걱정도 늘어날 수 있다. 미국 국채를 1100억달러(약 117조854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경제 제재에 대비해 이를 팔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최대 교역국 중국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국채를 덩달아 내다팔 우려가 있다.

EU는 더 급하다. 러시아 최대 원유와 가스 회사인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는 EU에 수출하는 천연가스 40%이상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번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것이 유력하다. EU의 가스 수입길이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과 협력하고 있는 미국 엑손모빌 등도 사업상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에서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셰일가스 생산량을 EU에 제공하자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미국이 가진 프래킹(수압식) 기술을 제공하고 천연가스 운송과 저장, 파이프라인을 통한 배송 등 기반시설까지 감안하면 최소 3년 뒤에나 가능한 얘기기 때문이다.

결국 크림공화국 귀속을 강행하는 러시아나 러시아를 고립시키겠다는 서구세계가 가진 무기는 하나같이 부메랑이다. 힘껏 던질수록 그 만큼 더 큰 힘으로 자기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치킨게임인 동시에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다. 주어진 파이는 일정하며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전세계 모두에 비극이 될 이 무모한 게임을 멈출 수 있는 길은 대화 뿐이다. 자신이 내밀고 있는 칼의 다른 쪽 날이 스스로를 향해 있음을 직시해야할 때다.

일촉즉발 우크라이나

- 러, 우크라 동부 병력집결..몰도바 침공 우려 - 오바마 유럽行..'러 제재' 논의하고 한미일 정상회담 - 푸틴, 크림 공화국 러시아 연방 병합 문서 최종 서명(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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