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봄이 오면 꼭 한 번 커다란 나무기둥에 귀를 대 보세요. 저 위에 있는 푸른 잎사귀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뿌리 깊은 곳으로부터 물이 힘차게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답니다. 콸콸 물줄기가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경이로워요.” 작가의 말이 끝나자 무대를 바라보던 꼬마들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빛난다. 쌀쌀한 산속 날씨에 감기라도 걸릴까 부모님이 꽁꽁 싸매주신 점퍼에 파묻혀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아이들이 아기새처럼 느껴졌다.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조명 달빛은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크게 숨 쉬며 나무와 호흡하자는 작가의 말에 잎사귀들은 바람결에 춤추며 화답하였고 포크가수 박강수 씨와 동물원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풀벌레들은 이에 질세라 목청껏 화음을 맞추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진행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함께 사진을 찍었던 어린 관객이 뜨거운 캔 커피를 건네주었다. 덕분에 덜덜 떨리던 온몸에 온기가 퍼져나갔다. “아까 같이 찍었던 사진이에요”라며 수줍게 보여준 휴대폰 속 사진과 “사실은 제 꿈도 아나운서예요”라고 부끄러워하며 말을 건네는 해맑은 미소 역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춥지도 않은지 여전히 앞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책과 음악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여러분은 어떤 나무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소나무요! 은행나무요! 밤나무요!”라며 대답도 잘했던 꼬마 관객들. 환한 달빛 아래 책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진한 나무냄새가 마음 속 한 편에 깊이 자리했으리라.
마침 그 다음 주에는 지인들과 함께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다녀왔다. 편안하게 휴식하자며 계획한 자리였는데 사실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서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그런데 지난번 유명산 자락에서 그랬던 것처럼 청태산 기슭에 가까워지자 가슴이 뻥 뚫리면서 맑은 공기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가득해졌다. 밤하늘 전체를 화사하게 밝히는 별빛을 보고 있노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눈을 감으면 그저 바람과 나무의 대화소리만 들리는 휴양림 안에서 내 마음은 잠시 쉼표를 그리고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향하는 길,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배웅해주던 석양 풍경은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해주는 것만 같았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에너지를 나누며 오래 행복하게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내 몸과 마음이 먼저 건강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단풍이 최고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잠시 일상의 페이지를 덮고 숲속을 걸으며 자연과 아낌없이 소통해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살아가는 멋진 여러분! 그래도 가끔은 잠깐만 쉬었다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