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11일자 4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송이라 서찬욱 기자] “김찬경 회장은 다른 CEO들과는 달랐어요. 시골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직원들을 잘 챙겼어요. 퇴직금으로 증자에 참여한 것도 좀 도와달라는 회장의 부탁 때문이었어요. 꼭 돌려준다는 말만 믿었죠. 그런데 밀항이라니. 회장의 두 얼굴에 치가 떨립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3차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난 10일.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 직원들은 몰려드는 고객들에게 가지급금을 지급하며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객들에겐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론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앞선 듯 했다.
미래저축은행 지방 소재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뉴스를 보고 영업정지 사실을 처음 알았다”면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본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영업정지 사실을 미리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지점 직원들에겐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불법대출과 횡령 등 각종 비리 혐의가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드러나면서 그 동안 대주주를 믿고 따랐던 직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미래저축은행 직원들은 퇴직금마저 날릴 위기에 처했다. 작년 하반기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회사 측이 반강제로 직원들의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유상증자에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렵다는 구실로 증자에 참여하면서 증서 하나 받지 못했다.
“일단 회사를 살려야 하니까. 꼭 돌려준다는 회장 말만 믿었죠. 겉으론 자발적이었지만 사실 반강제였습니다. 안 할거면 나가라는 분위기여서 거의 모든 직원이 예외없이 참여했습니다. 부부가 같이 근무하는 경우는 1억원 이상 털어넣었어요.”
퇴직금 이야기가 나오자 직원들은 “제발 퇴직금은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입사 6년차인 한 여직원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간외 수당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밤낮없이 일한 결과가 이건지...정말 서글프다”고 울먹였다.
아무래도 직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불투명한 미래다. 한 직원은 “회사가 망하고, 회장은 구속된 마당에 무슨 정신이 있겠냐만은 급여나 고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답답하다”며 “집안의 가장인 직원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영업정지 저축은행은 앞으로 새로운 주인에게 팔리거나 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는 가교저축은행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주인에게 매각될 경우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 크다.
지난해 1, 2차 구조조정 당시 4대 금융지주회사에 인수된 삼화와 제일, 토마토, 제일2·에이스 저축은행의 고용승계 비율은 각각 84%, 40%, 88%, 77%였다. 고용승계 비율이 썩 나쁘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계약직으로 재채용됐다.
저축은행 직원들은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간 금융당국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지난해 2차 구조조정때 이 같은 조치가 이뤄졌다면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들 저축은행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은 상당부분 실현 불가능하거나 눈속임을 위한 허위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한 직원은 “금융당국이 확실한 원칙을 갖고 처음부터 제대로 조치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시간을 더 끌면서 상황이 더 악화된 꼴”이라고 성토했다.
인터뷰를 마친 직원들은 “우리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믿고 거래한 고객들에 죄송할 따름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정부가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해주길 바란다”며 씁쓸히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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