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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부 제 역할 못하면 정책금융 폐해 되풀이"

송이라 기자I 2012.01.18 10:00:01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인터뷰
"금융도 하나의 산업..시장논리로 접근해야"
"중소기업 서민금융.. 시혜적 대상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시장 아닌 정부의 실패"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8일자 16면에 게재됐습니다.

“금융도 하나의 산업입니다.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접근해야 금융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찬바람에 하얗게 입김이 서린 지난 17일 오전.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기환(사진)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현 정부의 금융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일차적으로 재정과 통화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금융으로 미세조정하려고 들면 70년대 정책금융의 폐해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에 따라 “관치금융의 잔재를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면서 “중소기업 지원과 서민금융 역시 여전히 시혜적인 대상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서로에게 모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라기 보다는 정부의 실패라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로 복잡한 파생상품이 늘어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면서 “하지만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확산된 근본원인은 탐욕적인 금융권에 있다기 보다는 초저금리 정책으로 일관한 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서울파이낸셜포럼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 금융중심지 전략을 제시해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에 반영시켰다. 인수위에 보고서를 들고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그 결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다. 그러나 MB 정권 들어와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5년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중심지를 한다면서 오히려 외환 유출입 규제를 강화하는 등 역행하는 조치들만 내놓고 있다. 지난 2년간 우리나라의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은 크게 축소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그 동안 방어적인 입장이었던 우리에겐 지금은 기회일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그나마 신경을 쓰고 있다. 자본시장법 제정과 개정에 큰 역할을 했다. 헤지펀드도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 일부에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데 부작용 없는 일이란 없다. 혜택이 있으면 당연히 비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차기 정부에서도 금융중심지 전략을 계속 강조할 계획인가.

▲금융산업의 뒷받침없인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제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금융산업이 뒤쳐졌다. 금융은 정책의 수단으로써 실물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해왔다. 그 풍토가 여전하다. 외환위기를 겪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 실물경제엔 삼성과 LG같은 세계적인 회사가 있지만 금융분야엔 전무하다. 금융위기 이후 다시 제조업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있는데 잘못된 시각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흔들릴 때 오히려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원화의 태환성(국제화)이 필요하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우리 돈을 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정금액 이상의 원화반출이 금지돼 있는데 이것부터 풀어야 한다. 물론 이에 따른 위험도 있지만 장점이 더 크다.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권에서도 엔화와 위안화에 밀려 원화는 삼류통화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원화의 가치를 격하시키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원화가 국제화되면 경제운용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으로 국민주 방식이 거론되고 있는데.

▲국민주로 민영화하면 경영주체가 없어진다. 주인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국민주 매각은 주식값을 제대로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면 은행의 기반이 튼튼해질 수 없다. 민영화 후 확실한 주체가 있어야 회사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 국민주 방식이라는 발상 자체가 국내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산업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정책의 도구로 쓰려다보니 국민주 같은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메가뱅크론도 나쁘지 않지만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적으론 건전성이 중요하다.
 
-산업은행의 우리금융 인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산업은행과 일반 시중은행들과는 다르다. 상업은행과 정책금융을 진작 분리했어야 했다. 민영화를 계속 늦추다 보니 이상하게 됐다. 우리금융은 그냥 시장에 내놓는 게 낫다. 금융회사의 소유자에 대해 크게 신경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배구조의 문제지 경영주체가 외국인이냐 내국인이냐가 아니다. 영국도 80년대 같은 고민을 했다. 일부에선 자국 금융회사들을 외국에 넘길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결국 시장개방을 통해 금융빅뱅을 일으켰다.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인가.

▲C나 D학점 정도다. 금융분야에선 큰 진전이 없었다. 아직 실물경제 위주의 마인드가 강하다. 제일 큰 문제가 중소기업 금융이다. 정부가 아직 70년대 정책금융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시혜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마지못해 따라가지만 외국회사들은 나서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 캐나다의 경우 정부가 컨설팅기구를 만들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 대출이 아니라 대출을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해준다. 시장원리에 입각해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서민금융 역시 시혜적 접근은 안된다.
 


 -금융감독기구 개편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국내 감독체제는 금융위원회 위원과 금융위원회 간부, 그리고 금융감독원 직원 등으로 삼원화돼 있다. 특히 금융위 간부들은 기획재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기재부 복귀를 원하고 있어 전문화가 어렵다. 따라서 금융정책은 기재부로 다시 넘기고,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해 감독업무만 맡기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금융정책과 감독을 한꺼번에 하려다보니 이해상충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경제상황은 어떻게 보나

▲올해 거시경제는 별로 좋을 게 없다. 유럽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변해가고 있는데 회원국간 원만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재정이 부실하다보니 금융기관도 부실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올해 내내 우리 경제의 위협요소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기댈 곳이 별로 없다.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은 1932년 경북 의성 출신으로 미국 그린넬대학(Grinnell College)에서 역사학 학사(BA)를, 예일대학(Yale University)에서 역사학 석사(MA)를,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경제학 박사(Ph D)를 받았다. 1976년 귀국 전까지 버클리를 비롯한 미국 대학에서 13년간 경제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귀국 후에는 국제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경제부총리 자문관, 금융통화위원, KDI 원장 등을 지냈다. 1983년 10월 아웅산사태 직후 공직에 입문해 86년까지 상공부 차관과 남북경제회담 수석대표, 해외협력기획단장, 통상협력대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공직에서 물러났다가 외환위기 직후 대외경제협력 특별대사로 복귀해 위기 수습에 일조했다. 1999년 2008년까지는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고문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김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서울파이낸셜포럼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2001년 10월 설립됐다. 서울파이낸셜포럼의 가장 큰 목표는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로 모아진다. 특히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국제금융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하고, 여기에 필요한 비전과 전략 개발, 정책 조언에 앞장서고 있다. 2003년 1월엔 ‘아시아 국제금융중심지로서의 한국: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공개세미나를 개최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금융허브 전략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서울파이낸셜포럼은 매월 한 두차례씩 국내외 전문가와 정책 결정권자를 연사로 초청해 주요 정책이슈와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에 대한 세미나와 강연회를 열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박승 이성태 한국은행 전 총재는 물론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글렌 허바드(Glenn Hubbard)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장과 로버트 엥글(Robert Engle)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이 초대된 바 있다.
  
 인터뷰 = 송길호 금융부장   
 정리 = 김춘동 송이라 기자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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