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위기 후 최고치 환율 ...위기불감증이 진짜 위기다

논설 위원I 2024.12.23 05:00:00
환율이 달러당 1450원대를 넘어섰다.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내년 초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1500원대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고환율은 국내 물가를 자극해 서민을 어렵게 한다. 환율이 뛴 만큼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농수산물 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과거 외환·금융위기 때는 온 나라가 위기를 체감했다. 지금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격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20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대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과는 별개로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비상한 마음가짐으로 환율 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번 환율 급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촉발했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간) 금리를 내리긴 했지만 향후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의 고율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 금리 인하를 보류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강달러를 불렀고, 강달러는 다시 원화 약세(환율 상승)를 초래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환율 움직임이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외채를 갚지 못하는 게 외환위기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채권국”이라며 “외환위기 걱정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이고 순대외채권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올 3분기 말 기준 대외채권은 1조 807억달러로 대외채무(7027억달러)보다 3780억달러가 많다.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이 갚아야 할 돈보다 많다는 의미다. 9월 말 순대외금융자산도 9778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는 선진국형으로 체질을 일부 개선했다. 그럼에도 최근의 환율 불안을 일시적 현상으로 낙관해선 안 된다. 관세를 무기로 한 트럼프 리스크는 수출주도형 경제에 태풍 경고나 마찬가지다. 저성장 터널에 들어선 한국 경제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치권이 여·야·정 협의체 가동에 의견을 모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국정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일 때가 아니다. 현 시점에서 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위기 불감증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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