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5명중 1명꼴…여성 홈리스는 다 어디로 갔나

김미경 기자I 2023.08.30 03:10:00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268쪽|후마니타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가혜씨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그에 따르면 1959년생. 바깥 생활을 시작한 건 2007년 2월 말부터였다. 처음엔 서울 문래동 홈플러스 앞 지하도에서 박스를 깔고 잤다. 을지로 입구에선 3년, 종각역 지하도에서 쫓겨난 뒤로는 ○○공원 화장실에 터를 잡았다. 그는 그 대가로 공원과 화장실을 쓸고 닦는다. 밤 10시면 문이 잠기지 않는 화장실에 누워 자주 잠을 설친다고 했다. “낮에는 괜찮지만 밤에는 무서워요. 가게 문 닫고 사람 없고 여기 나 혼자 있으면 진짜 잠이 안 와. 근데 갈 데가 없잖아요. 이 노숙생활은 전부 다 남자예요.”

여성 홈리스(노숙자) 이가혜(64·가명)씨의 말이다. 홈리스(homeless)는 집이 없는 사람, 거리의 노숙인을 포함해 쪽방·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 1만4404명 가운데 여성은 5명 중 1명꼴(3344명·23%)로,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서사는 많지 않다. 목격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가들 역시 “여성 홈리스가 너무 보이지 않는다”고 곧잘 말하곤 했다.

책은 반빈곤 활동가들과 야학교사들로 구성된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김진희·박소영·오규상·이재임·최현숙·홍수경·홍혜은 7인 지음)이 2021년 봄부터 2년간 길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 7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들은 역사와 공원, 거리 구석구석을 헤매며 “미친 여자” “성난 여자” “말을 꺼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채록했다. 서울역사 중심으로 생활하는 경숙, 분노조절장애·당뇨·녹내장을 앓으며 거리 생활을 이어가는 영주, 노숙인에서 이제는 활동가로 사는 가숙 등 이들이 밟아온 가난의 경로를 조명한다. 남성들의 노숙은 실직 등 경제적 요인으로 축약되곤 하지만, 여성 홈리스의 경우 가난한 집안, 가정폭력, 가출과 남편의 착취, 성폭력의 굴레로 이어진다.

이들 증언에 따르면 여성 홈리스는 거리에서도 배제되고 소외된다. 무료급식소에선 남성 홈리스들이 “식당 가서 일하고 밥을 먹지”라고 구박하고, 성폭력 위험에 수시로 노출된다.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여자 홈리스들도 있다. 실제 여성 홈리스의 정신 질환 유병률은 42.1%로, 남성(15.8%)보다 배 이상 높았다. 정신 질환은 그녀들이 집을 나오게 만든 노숙의 원인이자, 고단한 노숙의 결과인 것이다.

책은 여성 홈리스가 겪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 남성 홈리스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젠더 관점이 부재한 홈리스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홈리스라는 이름 앞에 ‘여성’이 붙는 순간 처하는 환경과 필요가 달라진다”것이다. 저자들은 “그녀들의 가방 속에서, 봉다리 속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분투하고 때론 타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며 “아직 듣지 않았을 뿐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그녀들의 말에 함께 귀 기울여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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