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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남녀가 얼음기둥에 갇혀 몸이 묶였으니. 저 기둥이 녹아내려야만 만날 수 있는 운명.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거리 풍경의 애처로움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과연 ‘기구한 운명’이 맞나 싶기도 하다. 차림이나 장비로 볼 때 그저 함께 골프를 치러 나왔나 할 그림이니까.
그런데 의외의 ‘설정’은 따로 있다. 저들을 갈라 세운 얼음기둥이란 게 아이스바, 그중에서도 나눠 먹어야 제맛이란 ‘쌍쌍바’가 아닌가. 어차피 저들은 갈라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거다.
작가 이여름(51)의 기발한 상상이 무더위조차 즐겁게 한다. 인생을 얼려버릴 생각을 하다니. 굳이 왜? “일상의 순간을 달콤하게 저장하고 싶어서”란다. 필드의 남녀만이 아니다. 육아·물놀이·산책·만남·결혼 등 주위에 펼쳐지는 장면을 ‘얼음!’ 한마디로 투명하게 가두고 장기간 냉동보관에 돌입하게 한다. 유통기간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속 인생’(2022)으로 말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란다. ‘달콤한 미각’으로 추억을 불러내온 작업. 달고나·하리보·막대사탕 등을 두루 거쳤다. 혀끝의 기억이 가장 진정성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알았던 거다.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비트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아이스크림 속 인생’에서 볼 수 있다. 어른 손 한 뼘만 한 크기의 작품 150여점을 내놨다. 컬러에코폭시레진·휴먼미니어처·나무. 9.5×18.5×3㎝. 비트리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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