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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에연구사] 지구온난화, 탄소중립, 해수면상승과 같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단어들이 아침저녁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이다. 한때 공상과학 영화에나 등장하던 자연의 대재앙은 곧 닥칠 현실이 돼버린 듯하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 한창인 모양이다. 인간이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 환경을 바꾸고 풍경을 변화시키는 게 미덕이던 근대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과거의 그림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일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는 인물 중심의 종교화·초상화·역사화가 주류던 유럽 회화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연과 인간이 맺는 관계가 근대적 역학관계와는 반대인 풍경화를 그렸던 것이다. 거대한 자연에 대비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뿐더러, 그나마 얼굴이나 표정을 감춘 뒷모습으로 처리해 자연풍경 속 일부로만 의미를 뒀을 뿐이다. 가장 독특한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산중의 십자가’(1808)를 꼽을 수 있다. 일명 ‘테첸 제단화’(Tetschen Altar)라고도 불리는 작품은 프리드리히의 출세작이자 초기 대표작으로, 자연을 묘사한 풍경화를 종교화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의 일부로 뒤바꿔버린 예수의 십자가
유럽 미술에서 가장 위대한 주제 중 하나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작품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원죄를 대신 속죄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구원을 받고 계몽의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난다는 중요한 장면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주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미술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지오토, 그뤼네발트, 루벤스 같은 거장들은 이 중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의 표정과 얼굴, 마르고 뒤틀린 몸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또 그 주제를 위해 때론 예수 주변의 인간,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 요한 등을 함께 그려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프리드리히의 ‘산중의 십자가’에는 이런 인간적인 묘사가 철저히 생략돼 있다. 작품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자연의 일부처럼 묘사된다.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 듯한 울퉁불퉁한 바위산과 높이 솟은 전나무 사이로 우뚝 솟은 가냘프고 초라한 십자가는 거칠고 억센 자연에 대비돼 오히려 꿋꿋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더욱 눈에 띄게 하는 것은 해질 무렵 태양이 뿜어내는 광선이다. 불그스름한 배경 속에 하얗게 빛나며 아래로부터 위를 비추는 이 태양 조명 덕에 십자가의 성스러움은 한층 고조된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과 가냘픈 십자가의 대비는 불멸의 창조주와 마주친 필멸자 예수에 대한 간접적인 비유다.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함이 이 작품을 풍경화에서 종교화로 바꿔낸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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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처음 전시한 프리드리히는 숭고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불러내기 위해 검은 천으로 감싼 테이블 위에 작품을 놓고, 조명을 낮게 비춰 최대한 교회의 채플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발표 뒤에도 이 작품이 종교화로 적합한지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1809년 프리드리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같은 논란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황혼녘 햇빛은 하느님(성부)의 빛을 상징한다. 태양이 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직접 드러내는 시대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철저한 풍경화를 통해 숭고의 빛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는 순간을 표현했다는 뜻이다.
프리드리히의 ‘숭고’는 개인적인 성장배경과 당시의 사회환경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당시 스웨덴)의 엄격한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종교적으로 엄숙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두 누이를 병으로 잃고, 동생이 얼음 호수에 빠지는 현장을 목격한 경험은 그를 더욱 내면으로 이끌었다. 또한 프리드리히가 활동하던 18, 19세기의 독일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와 대조적인 독일의 낭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이성적·경험적 현실을 넘어선 무한한 상상력과 자연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낭만주의 사상은 프리드리히 특유의 신비하고 종교적인 정서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멜랑콜리한 분위기, 자연풍경을 통해 절대 변하지 않는 숭고함을 표현하는 두 가지를 쥐게 된 셈이다. 그가 추구한 ‘자연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는 착취적이고 지배적일 수가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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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십자가’를 발표한 이듬해 그린 ‘바닷가의 수도사’(1809)는 풍경을 추상화해 숭고의 감정을 극대화한 또 다른 걸작이다. 프리드리히가 고향 가까이에 있는 뤼겐 섬을 그린 풍경화는 실제 야외의 전경을 바탕으로 한다. 풍경 스케치를 여러 장 만든 후 그리는 대상의 종류·실루엣을 단순화해 호소력 있는 한 장의 그림으로 합친 작품에는 본래 2대의 돛단배와 별·달 등이 들어 있었으나 단순화해 합치는 과정에서 모두 생략됐다.
◇압도적 자연 앞에 선 왜소한 수도사의 막막함
작품에서 압도적으로 드러낸 것은 구도상 캔버스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크고 넓은 하늘과 바다다. 곧 폭풍이 올 듯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경계는 매우 흐릿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바라봐야 할지 난감하다. 게다가 정작 수도사라 할 인물은 표정은커녕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작게 그려졌는데, 그나마 어두운 바다와 하늘의 색에 묻혀 상반신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늘을 향한 듯 휘어진 자세를 취한 그는, 모래언덕 같기도 하고 절벽의 끝 같기도 한 야트막한 땅에 서있어 아슬아슬한 느낌마저 든다. 양옆으로 뻗은 수평적 구도의 작품에서 수도사는 어찌 보면 유일하게 수직적 방향을 취해 땅과 하늘과 바다를 잇는 존재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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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가히 파격적인 색채와 인물을 통해 압도적인 풍경과 그 앞에 선 왜소한 수도사의 고독함·막막함 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단순한 구도가 만들어낸 무한하고 추상적인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바다와 육지로 나뉜 경계인 수평선은 캔버스와 액자를 넘어서 무한히 뻗어나가 감상자가 수도사와 같은 방향에 선 듯한 환영을 일으키기도 한다. 거의 보이지 않는 수도사와 같은 땅을 밟고 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드는 감정은 단순한 실제 풍경에 대한 감상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다. 바로 ‘숭고’인 것이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룸은 1961년 쓴 글 ‘추상의 숭고성’에서 이 작품을 마크 로스코의 추상 표현주의와 비교하며 “실제의 재현을 넘는 무한의 문턱을 열어젖혀, 보이는 자연의 풍경과 보이지 않는 숭고 감정을 이어준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최근 한 드라마에 등장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추앙’이란 단어가 있다. 추앙은 사랑이란 감정을 넘어 높이 받들어 우러르고 그의 편이 돼 준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세대의 ‘자연보호’나 ‘자연을 사랑하자’ 등의 구호가 실패해 지구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성해 본다면 말이다. 일찍이 자연을 추앙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던 프리드리히가 바로 그 대안이 아닐까 싶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