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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분명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거다. 캐릭터 이름은 확실치 않지만. 착한 이미지는 아니었을 거다. 원체 악당에 관심이 많은 작가 이해강(33)의 그림이니. 그래도 당장 맞서 싸워야 할 듯한 괴물로 등장시키진 않으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섞일 수 없는 요소를 그럴 듯하게 어울려 놓는 작가의 장기는 재료에서부터다. 유화물감과 스프레이페인트란 다른 차원을 버무려 인디컬처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마련해왔으니까. 둘 중 굳이 ‘전문영역’을 말하라면 뒤쪽이 무거웠다. 그래피티·애니메이션 등에서 주로 스프레이작업을 해왔던 터. 그러다가 덩어리란 물성이 그득한 끈적이는 유화물감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건데.
반질한 바닥에 얹은 두툼한 질감이 독특한 ‘BDBR94’(2019)는 그 연작 중 한 점. “경계와 경계 사이에 있는 애매한 존재가 아닌 ‘경계자’란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유쾌한 반격”이라고 작가는 작품세계를 설명해왔다. 자신을 가리키는 수식으로도 ‘딱’이다.
14일까지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25길 도잉아트서 유재연·남궁호·최수인·장승근과 여는 기획전 ‘여기 아무도 없다’(No One Is Here)에서 볼 수 있다. 정통회화부터 스트리트아트까지 컬러감 넘치는 젊은 작가 5인이 힘을 합친 전시다. 캔버스에 스프레이페인트·오일. 90.9×72.7㎝. 작가 소장. 도잉아트 제공.